2024년 11월 27일(수)

폐지 위기 몰린 비인기종목 아이스하키팀 끝까지 '뒷바라지' 해준 키다리 아저씨

(좌) 정몽원 회장 / 한라그룹, (우)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국가대표2'


한라그룹 정몽원 회장, 아이스하키에 각별한 애정국내서 아이스하키 '비인기종목' 찬밥신세


[인사이트] 김지혜 기자 = 1997년 외환위기가 불어닥치고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는 와중에도 자사 아이스하키 실업팀을 끝까지 지켜낸 기업 회장이 있다.


글로벌 자동차 부품 업체 '만도'를 주축으로 한 한라그룹의 정몽원 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정몽헌 회장은 아이스하키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해외에서 아이스하키는 '동계 스포츠의 꽃'으로 여겨진다. 미국에서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는 미식축구, 야구, 농구 대회와 더불어 4대 프로스포츠 대회로 대접받을 정도다.


그런데 해외의 위상과는 다르게 막상 국내에서 아이스하키는 비인기종목으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이스하키 실업팀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남자 예선 플레이오프 대한민국 대 핀란드 / 뉴스1


국내 아이스하키팀의 척박한 환경정몽원 회장의 헌신적 뒷바라지 덕에 위기 딛고 성장


이 같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국내 아이스하키팀은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간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은 남녀 모두 한 번도 올림픽 출전을 해보지 못했을 만큼 환경이 열악했다. 그러나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는 개최국 자격으로 참가해 쟁쟁한 아이스하키 강국들과의 경기에서 대등하게 싸우면서 주목을 받았다.


국내 아이스하키팀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있었다.


정 회장은 재계에서 소문난 아이스하키 마니아다. 그는 고려대에 재학하던 시절부터 아이스하키 경기를 즐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제공 = 한라그룹


주변 만류에도 비인기종목인 아이스하키 실업팀 창설IMF 여파로 국내 3개 실업팀 모두 해체


이후 1994년 그룹 계열사 '만도기계' 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정 회장은 주력 제품인 에어컨을 홍보하는 데에도 아이스하키가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해 실업팀 '만도위니아(현 안양한라)'를 창단했다.


비인기종목인 데다 연 수십억원의 운영비가 든다는 이유로 주변에서는 모두 만류했지만 그는 끝까지 창단을 밀어부쳤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이처럼 만도위니아를 비롯해 석탑건설, 동원드림스, 현대오일뱅커스 등 실업팀 4개가 있었다.


그러나 IMF가 닥쳐오자 국내 실업 1호팀인 석탑건설의 해체를 시작으로 2003년에는 동원드림스, 현대오일뱅커스마저 해체됐다.


사진 제공 = 대한아이스하키협회


"돈 먹는하마"…아이스하키 팀의 존폐 위기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만도위니아'의 우승


한라그룹 역시 알짜 계열사를 매각하는 등 심각한 경영난을 피해갈 수 없었다. 유일하게 남은 아이스하키팀인 '만도위니아'마저 자연스럽게 존폐 위기에 몰렸다.


회사 내부에서는 '돈먹는하마'인 아이스하키팀부터 없애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팀 해체가 목전에 다가온 1998년 정 회장은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 부진을 겪던 '만도위니아'가 첫 우승을 했던 것. 실로 영화와 같은 순간이었다.


이는 실의에 빠져 있던 정 회장에게 큰 위안을 안겨줬다. 정 회장은 어려운 시기에 열심히 싸워준 아이스하키팀을 통해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도전 정신'을 배웠다고 회상했다.


정 회장의 아이스하키 사랑은 이를 계기로 더 깊어지게 됐다.


한라그룹 홈페이지


정몽원 회장, 사재 20억, 협회 운영비로 쓰기도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며 허드렛일 도맡아


이후 정 회장은 아이스하키팀 명맥 유지를 위해 일본 닛폰 제지, 오지 제지, 닛코, 고쿠보 등 타 아이스하키팀과 합쳐 한일 아이스하키 리그를 창설했다. 한국 아이스하키의 명맥은 정 회장의 노력으로 간신히 이어지게 됐다.


2013년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에 취임한 그는 매년 한라 아이스하키팀에 50억~60억원, 아이스하키 협회에 15억원을 지원해왔다. 또 사재 20억원 가량을 협회 운영비로 사용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23년 넘는 기간 동안 1천억원 이상을 아이스하키팀에 쏟아부었다.


재정적 지원 뿐만이 아니다. 정 회장이 선수들과 함께 3성 호텔에서 자고 함께 밥을 먹으며 경기 당일에는 선수들이 마실 물을 직접 담기도 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2017-2018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오지 이글스(일본)을 3대1로 꺾고 우승을 확정지은 안양한라 / 뉴스1


정몽원 회장 "판을 깔아줬을 뿐 모두 선수들이 해낸 일"남다른 '아이스하키 사랑'으로 일궈낸 한국 아이스하키팀


때론 허드렛일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정 회장은 오늘의 대한민국 아이스하키팀을 일궈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 회장이 아니었다면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은 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평하고 있다.


지난해 5월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사상 첫 월드챔피언십 승격이 결정되자 정몽원 회장은 선수들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선수들 역시 정 회장의 간절함과 노력을 알고 있기에 늘 그에게 특히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정몽원 회장 자신은 "판을 깔아줬을 뿐 모두 선수들이 해낸 일"이라고 말한다.


경영위기에도 한국아이스하키 산실로 평가받는 '안양 한라'를 살뜰히 뒷바라지하며 끝까지 팀을 지켜낸 정 회장.


그가 남다른 아이스하키 사랑으로 일궈낸 대한민국 아이스하키팀이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