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그래도...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판사 앞에서 당당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억울했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아니라고 호소하는데,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죄를 반성, 인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판사는 그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그 순간 그는 생각했다.
사건은 얼마 전 지하철에서 한 여고생의 외침으로 시작됐다. 당시 직장을 구하는 중이던 남성 가네코 텟페이는 회사 면접을 보러 가기 위해 정신없이 지하철에 올랐다.
지하철은 만원이었다.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에서 간신히 자리를 잡은 텟페이는 날카로운 목소리를 듣고 당황했다.
근처에 있던 여고생과 몸이 살짝 스치면서 성추행범으로 몰린 것이다.
텟페이는 현행범으로 체포됐고, 경찰은 조사에서 혐의를 인정할 것을 강요했다. 텟페이는 그들에게 이미 '유죄'였다.
담당 형사는 범행을 자백하라고 추궁했지만 텟페이는 끝까지 억울함을 호소했고, 결국 구치소에 갇히고 말았다.
그곳에서 고독감, 초조함, 억울함에 시달리던 텟페이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언제나 자신이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사회에 속한 힘없는 '개인'이라는 현실을 직감하는 순간이었다.
텟페이는 검찰로 넘어간 이후에도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다. 검찰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기소했다.
그렇게 법정에 선 텟페이. 증거도 없고, 증인도 없는 사건이 여고생의 진술만으로 여기까지 왔다.
변호사는 그에게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면 벌금형으로 선처를 받을 것이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텟페이는 인정할 수 없었다. 사실 인정할 것이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끝까지 무죄를 주장한 그는 성추행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위 내용은 지난 2007년 1월(한국 기준 2008년 12월)에 개봉한 일본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의 줄거리다.
유죄 확률 99.9%라는 힘겨운 싸움에서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몰린 남성은 외롭게 투쟁했다.
이 영화의 감독인 스오 마사유키(周防 正行)는 2005년 실제로 일본에서 발생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영화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사건 당시에도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몰린 남성은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지만 징역형에 처해졌다. 이후 항소, 상고했지만 최고재판소에서 상고를 기각하면서 유죄가 확정됐다.
감독은 이 사건을 영화로 제작하면서 일본 사법 제도의 허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또한 유독 성범죄 사건에서만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개봉 후 무려 10년이 지났지만 탄탄한 스토리와 전개, 영화적 의미 등으로 여전히 수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가 계속해서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현실성'이다. 당시 일본 사회를 정확히 묘사한 이 영화는, 정확히 10년 후 우리 사회를 정확히 예측했다.
스오 감독은 영화 끝부분, 페르소나인 텟페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사회에 무거운 메시지를 던졌다.
부디 당신이 심판받기를 원하는 그 방법으로, 나를 심판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