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서 '약재 장수'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아버지
[인사이트] 김지혜 기자 = 6.25전쟁 피난길에 약을 팔던 '약재 장수'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제약회사를 이끌고 있는 이가 있다. 김영진 한독 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김영진 회장은 한독 창업주인 고(故) 김신권 한독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어린시절 김영진 회장은 '약재 장수'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아버지 故 김신권 명예회장을 보며 자랐다.
처음 故 김신권 명예회장은 만주에서 약사보다는 조금 아래라고 할 수 있는 '약종상(藥種商)'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그는 1944년 중국 단둥(丹東)에서 첫 약국 '금원당약방(金垣堂藥房)'을 열었다가 다음해에 해방이 찾아오자 신의주로 가게를 옮겨 '김신권 약방'을 열었다.
오늘날 '연매출 4179억' 한독약품의 전신 연합약품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 정권이 들어섰고 故 김신권 명예회장은 평양으로 쫓겨 가게 됐다. 이후 6.25전쟁이 터진 다음 1.4후퇴 때에는 부산까지 피난을 가야 했다.
약재 장수였던 故 김신권 명예회장은 피난길에도 약을 챙겨갔고 부산 국제시장에서 '동서약품' 창업을 거쳐 1954년 서울에서 오늘날 한독약품 전신인 연합약품을 창업했다. 지금의 '한독'은 이 곳에서부터 출발한 셈이다.
1959년도에는 단순히 약재를 떼어 와서 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약을 제조까지 하기 시작했다. 故 김신권 명예회장은 천신만고 끝에 당시 손꼽히는 기술력을 가진 독일 '훽스트(Hoechst, 현 사노피)'사와 제휴하게 된다.
이후 공장을 건설해 마침내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사명을 '한국·독일'의 약자인 '한독'으로 바꿨고 1964년에는 훽스트사에서 자본도 참여해 합작형태가 됐다.
이처럼 총 70년 동안 '약업 외길 인생'을 살았던 故 김신권 명예회장을 보며 자란 그의 아들 김영진 회장은 1984년 제휴사인 '훽스트'사에서 첫 사회생활의 발을 뗐다.
김영진 회장이 독일에서 배운 '인간 중심' 경영철학
독일에서 2년간 근무를 하며 그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했다.
독일은 말단 사원이 가장 먼저 퇴근하고 상사들이 남아 야근을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경영 시스템 역시 매우 투명했다.
2년 뒤 귀국해 국내 기업에 입사했을 때 독일 기업 문화와는 완전히 정반대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김영진 회장은 회상했다.
출근하면 부장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신문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곤 했다.
故 김신권 회장은 "한독약품의 성장은 그동안 땀과 열정을 쏟아낸 수 많은 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독 창업주 故 김신권 회장 "사람을 믿고 존중하는 신뢰경영"
그에게 직원이란 단지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가 아니라 신뢰를 기반 삼아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였다.
이와 같은 사업 철학을 가진 아버지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은 이후 김영진 회장은 독일에서 배운 '투명 경영' 문화부터 하나씩 도입했다.
평생을 '신뢰', '노력', '투명경영'을 마음에 새기며 늘 상도를 지키고자 노력한 아버지를 닮은 행보였다.
한독은 창업주 故 김신권 회장의 기업 이념인 '사람을 믿고 존중하는 신뢰경영'을 본받아 여전히 직원 개인의 행복과 복지를 우선하는 기업문화를 제시하고 있다.
임직원들 간의 소통을 통해 직원 스스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김영진 회장은 스스로를 'Chief Entertainment Officer(CEO)'라고 칭하며 소탈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부친 정신 이어받아 '정도경영'·'투명경영' 고집하는 김영진 회장
이처럼 직원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한독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함께 걸으면서 대화하는 '트래킹 간담회'다.
지난 2013년 한 직원의 제안에서 비롯된 트래킹 간담회는 김영진 회장과 직원들이 서울 근교 남한강변 산책로를 1시간 30분 가량 걸으며 담소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한독의 실적 역시 순항중이다. 대표 제품인 '케토톱' 등 일반약품은 500억원 이상의 매출실적을 올리고 있으며 숙취해소제 '레디큐', 건기식 브랜드 '네이처셋'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합작기업으로 운영되던 한독은 지난 2012년 사노피와의 합작 관계를 정리하고 현재 독립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지난 2014년에는 창립 60주년을 맞이했다.
약업 외길 인생을 걸었던 부자(父子)의 손 아래에서 성장중인 한독. 돌아가신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 '정도경영', '투명경영'을 고집하고 있는 김영진 회장이 한독을 더욱 큰 글로벌 제약회사로 성장시킬 수 있을지 기대가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