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이하린 기자 = 2006년 한 세미나에서 임원들과 함께 축구를 즐기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모습이 새삼 화제다.
12년 전의 최 회장은 이웃집 아재(?) 같은 지금의 친숙한 모습과는 달리 비교적 슬림한 몸매에 축구선수 뺨치는 비주얼을 장착하고 있다.
캡 모자를 뒤로 쓰고 임원진들과 함께 열심히 달려가는 모습은 그의 취임 20주년과 맞물려 그동안 최 회장이 보여준 '소통' 리더십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듯하다.
지난 1일은 최 회장이 취임한 지 20년이 되는 날이었다. 부친인 故 최종현 선대회장이 1998년 8월 26일 타계하면서 최 회장은 38세의 젊은 나이로 그룹 총수 자리에 올랐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만큼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SK그룹은 재계 순위 5위에서 3위로 올라섰고 임직원 수가 2만 명에서 9만 명으로 늘었다.
1998년 당시 32조원이던 그룹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192조억원으로 '폭풍 성장'했으며 수출 규모 또한 10배 이상 커지면서 내수 기업이라고 불리던 한계를 벗어났다.
SK의 괄목할 만한 성장의 중심에는 최 회장의 과감하고 치밀한 인수합병 역사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신의 한 수'라 불리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2012년 단행한 SK의 하이닉스 인수다.
최 선대회장이 에너지와 통신 분야에서 SK의 경쟁력을 힘껏 키워놨다면 최 회장은 일찌감치 반도체의 발전 가능성을 내다봤다. 지금과 달리 반도체 업황이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시절이었지만 최 회장은 자신이 있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하이닉스 인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치는 임원들을 향해 그는 "나를 믿어달라"고 꾸준히 설득했고, 결국 매각해 인수합병에 성공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현재 SK하이닉스는 SK그룹 전체의 실적을 견인하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매출은 약 30조원, 영업이익은 13조원이 넘는다.
SK가 내수 기업이라고 불리던 한계를 넘고 국내 대표 수출 기업으로 성큼 나아간 데에는 이러한 최 회장의 하이닉스 인수 '매직'이 있었다.
인수합병에 자신감을 얻은 최 회장이 다음 먹거리로 삼은 것은 제약·바이오 분야다. 최 회장은 바이오산업 분야에 과감히 투자하면서 '제2의 반도체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6월 SK는 글로벌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아일랜드 공장을 인수했으며, 올해 7월에는 미국 바이오 위탁개발생산업체(CDMO) 앰팩의 지분을 100%를 사들였다.
신약과 항생물질 연구 개발 등을 담당하는 SK그룹의 자회사 SK바이오팜은 독자 개발한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의 FDA 신약승인신청을 앞두고 있다.
SK바이오팜은 최 회장의 맏딸 최윤정 씨가 지난해 6월부터 몸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당시 재계에서는 최씨가 그룹 주력사가 아닌 SK바이오팜에 입사한 것이 굉장히 '상징적'이라는 시각이 나왔다.
그룹 총수의 자제는 주력사에 입사하는 수순이 일반적이지만 최씨가 SK바이오팜을 택한 것은 SK의 차세대 신성장동력이 제약·바이오 분야라는 방증이기도 하다는 평이다.
최 회장의 관심사에서 '사회적 가치 창출'도 빼놓을 수 없다. 자고로 기업의 최우선 과제는 이익의 극대화라지만 최 회장은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더블보텀라인'을 강조한다.
그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행복 극대화'를 내세우면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기업은 소비자와 사회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는 철학을 공고히 한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 SK텔레콤 등을 비롯해 그룹 내 모든 계열사에 사회적 가치를 접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하도록 주문하고 있으며, 지난 2월 그룹 신년회에서도 "2018년을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뉴SK의 원년으로 삼자"고 선포했다.
SK그룹은 또한 SK행복나눔재단이라는 사회 공헌 재단을 만들어 SK 계열사 별로 출자된 자금을 바탕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SK행복나눔재단은 결식아동의 끼니 해결에 일조하는 '행복도시락', 방과 후 학교를 위탁운영하는 '행복한학교' 등을 통해 사회의 소외된 이들을 살핀다.
"혁신적으로 변화할 것인가(Deep Change), 천천히 사라질 것인가(Slow Death)"
20년 취임 일성에서 최 회장이 던진 변화의 화두다. 천천히 사라지는 기업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세계로 나아가는 SK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