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수)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이 된 배경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의 '33년 사랑'이 있었다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 격려하는 정의선 부회장 / 뉴스1


[인사이트] 김지현 기자 = 1980년대부터 40년 가까이 세계 최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 양궁. 


한국 양궁 대표팀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8개 종목 중 4개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세계 최강의 위엄을 보여줬다.


혹자는 8개의 금메달 중 7개 이상을 목표로 세우고, 내심 전관왕을 기대했던 한국 양궁으로서는 이번 결과(금메달 4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시아 양궁 수준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 이번 아시안게임에 메달 독식을 막기 위한 여러 장치가 있었다는 점에서 금메달 4개를 딴 대표팀의 성적은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최강의 자리를 노렸던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의지를 꺾는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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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한국 양궁은 도대체 어떻게 40년 가까이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까.


그 배경에는 엉성한 행정으로 빈축을 사는 다른 체육 협회들과 달리 일 처리가 늘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 대한양궁협회, 그리고 이 협회를 2대에 걸쳐 후원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있었다.


현대차그룹과 한국 양궁의 인연은 1985년부터 시작된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1984년 현대정공(現 현대모비스) 사장이던 시절 1984 LA 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의 금빛 드라마를 본 것을 계기로 한국 양궁 육성을 결심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 사진 제공 = 현대자동차고룹


그는 1985년 대한양궁협회장에 취임한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 현대정공에 여자 양궁단, 현대제철에 남자 양궁단을 창단했다. 33년 후원의 서막이었다.


그리고 그는 1985년부터 1997년까지 4번의 양궁협회장을 역임했고, 1997년부터 지금까지 명예회장을 맡아 양궁 인구 저변 확대, 인재 발굴, 첨단 장비 개발 등에 45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이 같은 정 회장의 '엄청난' 투자 덕분에 현재 한국 양궁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훈련 시스템도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해 여러 나라가 이를 배워가고 있다.


비인기 종목이었던 한국 양궁을 세계 최강으로 만든 정 회장의 양궁 사랑. 이는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에게도 대물림됐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양궁 남자리 커브 동반 금·은메달 획득한 남자 양궁 대표팀과 정의선 부회장 / 뉴스1


2005년부터 양궁협회장을 맡아온 정 부회장은 한국 양궁 활성화 방안을 연구하도록 지시하고 양궁 유망주의 체계적인 육성, 양궁 대중화 사업을 통한 저변 확대, 양궁 스포츠의 외교력 강화 등 중장기적인 양궁 발전 계획을 세워 시행해나가고 있다.


정 부회장은 또 명성이나 이전 성적보다 현 실력으로만 국가대표가 될 수 있도록 공정한 시스템을 정착시켜 선발전의 투명성을 높였다.


실제 양궁협회는 다른 체육 협회와 달리 선수 선발 과정에서 의혹이 한 번도 제기되지 않았던 아주 깨끗한 협회다.


학연, 지연, 혈연 등 어떠한 인맥도 소용없으며 대표팀을 희망하는 선수들은 예외 없이 4,055발을 쏘는 선발전을 거쳐야 한다.


정의선 부회장에게 금메달 축하 받는 여자 양궁 대표팀 / 뉴스1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언제 탈락할지 모르는 '엄격한' 선발전 때문에 선수들의 경기력은 저절로 향상이 되고, 이 때문에 혹자는 "한국 대표팀 선발전이 올림픽보다 더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정 부회장은 선수들의 사기 진작에도 힘을 쓰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6 리우 올림픽에서의 일화다.


선수들과 종종 만나 격의 없이 식사를 하고 다양한 선물도 주는 것으로 유명한 정 부회장은 리우 올림픽 당시 양궁 대표팀 선수들에게 '대통령급 경호'를 제공해 화제를 모았다.


정 부회장은 선수들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휴게실, 물리치료실, 샤워실 등이 갖춰진 트레일러 휴게실을 준비하고 경기장에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게 사설 경호원을 고용했다. 심지어 투싼, 맥스크루즈 방탄차까지 제공했다.


현대차 정몽구배 한국양궁대회 우승 트로피 받는 최미선 / 뉴스1


또 경기장 인근 식당을 빌리고 상파울루에서 한식 조리사를 초빙해 언제든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점심에는 한식 도시락을 만들어 경기장이나 선수촌에 전달했다.


이 같은 특급 지원을 받은 양궁 대표팀은 리우 올림픽 당시 올림픽 사상 최초로 남녀 개인·단체전에서 첫 전 종목 석권의 기념비를 세웠다. 정몽구-정의선 부자(父子)의 양궁 사랑이 열매를 맺은 순간이었다.


1984 LA 올림픽부터 2016 리우 올림픽까지 한국 양궁 대표팀이 목에 건 메달 수는 금메달 23개(여자 단체전 8연패), 은메달 9개, 동메달 7개.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의 자리를 수십 년째 유지하고 있었던 이유는 선수들과 코치진의 피나는 노력이 첫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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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선수들과 코치진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양궁 사랑'이 두 번째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세계 양궁 수준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 둘의 '시너지'는 한국 양궁의 위상이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오히려 더 큰 발전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2022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