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수)

절친이던 삼성 이병철과 LG 구인회 창업주가 '원수 사이'된 결정적 이유

삼성 창업주 故 이병철 회장과 LG 창업주 故 구인회 회장 모습 / 사진제공 = 삼성그룹, LG그룹


[인사이트] 장영훈 기자 = 재계에서는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양대산맥이자 영원한 라이벌로 삼성그룹과 LG그룹을 꼽는다.


생활가전에서부터 모바일 분야는 물론 차세대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바이오 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삼성그룹과 LG그룹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을 펼치며 오늘날 한국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다.


삼성그룹과 LG그룹을 빼고는 한국 경제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두 그룹은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면 이들 두 그룹은 언제부터 라이벌 관계였던 것일까. 두 그룹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96년 전인 19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대 삼성물산공사 시절 창업주 이병철 회장 모습 / 사진제공 = 삼성그룹


아버지 이찬우와 어머니 권재림 사이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은 11살이던 1921년 처음으로 집을 떠나 시집 간 둘째 누나가 있는 진주에 가게 됐다.


이병철 회장은 둘째 누나 집에서 가까운 진주지수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학교를 다닌지 6개월만에 다시 서울로 전학을 갔지만 그곳에서 이병철 회장은 역사적인 인물을 만나게 된다.


바로 LG그룹 전신인 럭키금성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이었다. 사실 1907년 8월생인 구인회 회장은 1910년 2월생인 이병철 회장보다 3살 많은 형이었다. 


하지만 구인회 회장은 한 해 전인 1921년 지수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한 상태였고 두 사람은 3학년 때 같은 학급 친구로 만나게 됐다. 물론 두 사람은 사이좋은 친구였다.


1961년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가운데)이 시험통화 하고 있는 모습 / 사진제공 = LG그룹


출석부에 구인회 회장이 6번, 이병철 회장이 26번이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훗날 이병철 회장의 차녀 이숙희 씨가 구인회 회장의 셋째 아들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결혼하면서 사돈 관계로 발전했다.


3살이라는 나이 차를 극복하고 절친한 사이로 발전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래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의 말 한마디가 서로에게 등을 돌리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말았다.


삼성전자 설립을 구상하고 있던 이병철 회장은 1968년 봄 자신이 만든 안양골프장(현재의 안양베네스트GC)에서 구인회 회장을 만났다.


안양골프장 파라솔 아래 장남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이 같이 있는 자리에서 이병철 회장은 절친인 구인회 회장에게 불쑥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 사실상 통보였다.


이병철 창업주와 경영 실사에 나선 이건희 회장 젊은 시절 모습 / 사진제공 = 삼성그룹


"구 회장, 삼성도 앞으로 전자사업을 할라카네."


당시 삼성그룹은 주로 비료와 조미료, 설탕, 모직 등의 사업을 벌였고 LG그룹은 화학과 전자 등의 사업에 주력하고 있었다.


이병철 회장의 말을 듣고 있던 구인회 회장은 버럭 화를 냈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는 벌떡 일어나 불편한 기색으로 자리를 떠났다.


"이익이 남으니까 할라카는 거 아이가? 사돈이 논을 사믄 배 아프다 카더마는... 옛말에 그른 기 하나도 없는 기라!"


1962년 계약 체결 후 담소를 나누는 구인회 회장 모습 / 사진제공 = LG그룹


46년간 이어져오던 이병철 회장과 구인회 회장의 우정이 원수지간 사이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구인회 회장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이듬해인 1969년 이병철 회장은 오늘날 삼성전자의 전신인 삼성전자공업을 설립해 전자사업에 뛰어들었고 구인회 회장은 그해 12월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은 끝이 나고 말았다. 구인회 회장은 살아 생전에 이병철 회장이 자신의 텃밭과도 다름없는 전자사업에 뛰어드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섭섭했다고 한다.


구인회 회장은 자신의 아들 구자경 명예회장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병철 회장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고스란히 읽혀지는 대목이다.


중앙일보 윤전기를 시찰하고 있는 이병철 회장 모습 / 사진제공 = 삼성그룹


"그쪽(삼성)에서 꼭 그래 하겠다면, 서운한 일이지만 우짜겠노. 서로 자식을 주고 있는 처진데 우짜노 말이다.


한 가지 섭섭한 점이 있다면 금성사(오늘날 LG전자)가 지금 어려운 형편에 있는 점을 노려서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자고 덤비는 것 같은 기라.


그러나 내는 내 할 일만 할란다. 나도 설탕 사업 할락하면 못할 거 있나. 하지만 나는 안 한다. 사돈이 하는 사업에는 손대지 않을끼다"


이쯤에 드는 궁금증 하나. 이병철 회장은 절친이자 사돈관계인 구인회 회장과 사이가 틀어질 줄 알면서도 전자사업 분야에 왜 뛰어든 것일까.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 모습 / 사진제공 = LG그룹


이병철 회장은 전자사업에 진출할 때 "시장은 넓은데 공급하는 사람이 적거나 독과점인 상태가 되면 안주하게 되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적절한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선점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할지라도 뛰어 들어가야 한다"며 "국내에서 먼저 경쟁을 통해 임을 키운 뒤에 우리도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죽마고우 사이였던 이병철 회장과 구인회 회장의 관계는 이병철 회장이 전자사업에 뛰어들면서 깨지고 말았다.


이병철 회장이 구인회 회장에게 전자사업에 뛰어들겠다고 통보했을 당시 현장에 같이 있었던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를 통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 모습 / 사진제공 = 삼성그룹


"안양골프장 야외 테이블에서 아버지(이병철 회장)와 나(이맹희 명예회장), 구인회 회장님이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가 아버지가 '우리도 앞으로 전자산업을 하려고 하네'하고 말했다.


구 회장은 화를 벌컥 내면서 '남으니까 하려고 하지!' 하고 쏘아붙였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민망해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일로 두 분 사이는 멀어졌다. 그후 삼성에서 일하던 매제 구자학은 금성사로 돌아갔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1987년 12월 1일 이건희 회장은 당시 46세의 나이로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랐다. 현재는 그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실질적 수장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LG그룹은 창업주 구인회 회장 뒤를 이어 2대 구자경 명예회장, 3대 구본무 회장이 그룹을 이끌었고 현재 구광모 회장이 취임해 4세 경영 체제에 들어서며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