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장영훈 기자 = "삼성에서 내놓은 브랜드가 업계 4위라는 것은 치욕적인 일이죠. 그것도 오너 이서현 사장이 만든 브랜드인데 말이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막내 딸인 이서현(46)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은 요즘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패션사업의 성장세가 급격하게 꺾인 가운데 미래 성장동력으로 정하고 야심차게 추진했던 '에잇세컨즈'가 극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 패션업계에서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위상'은 찬란했던 과거를 떠올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건희 회장의 특별 지시로 지난 2008년 전후로 패션 브랜드의 고급화 전략을 구사했지만, 사실상 실패로 끝나면서 매출은 물론이고 이익도 추락한 상황인 탓이다.
이서현 사장은 물론이고 삼성물산 경영진들은 SPA브랜드 유니클로가 지난 2005년 국내 론칭한 이후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것으로 너무 쉽게 생각했다.
싸구려 옷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 '한 계절 입고 버린다'는 SPA 브랜드 컨셉트를 전통적인 패션 장인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이랜드 스파오가 2009년 브랜드를 론칭한 것에 비해 한참 지난 2012년에야 '에잇세컨즈'를 출시한 것도 그런 '고루한' 경영진들의 판단 착오에서 비롯됐다.
뒤늦게 폭발적인 성장세에 놀란 이서현 사장은 이 분야의 전문가인 권오향 '에잇세컨즈' 디자인담당 전무를 영입해 '에잇세컨즈'를 공격적으로 선보였다.
초반 성적표는 나쁘지 않았다. 오픈한 이후 연일 완판 행진을 이어가면서 삼성이 내놓은 SPA 브랜드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삼성물산에서 '에잇세컨즈'를 실제로 담당했던 직원들의 전언에 따르면 초기의 성공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거대한 삼성그룹이라는 관료조직에는 'SPA 브랜드'가 태생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오너를 중심으로 고상하고 우아한 사업을 하는 대기업 패션 비즈니스에는 '빠른 속도'와 적당한 수준(?)의 '미투 상품'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을 퇴직한 한 고위 임원은 "시작은 좋았지만 이서현 사장을 중심으로 '에잇세컨즈'가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SPA 브랜드의 본질에서 멀어졌다"며 "그냥 자금만 투입하면 저절로 시장을 석권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오판'으로 삼성전자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했던 윤주화 사장을 영입한 것을 꼽았다.
삼성전자에서 전자제품 만들던 인사가 들어와서 패션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황에 '에잇세컨즈' 사업을 추진했는데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는 지적이었다.
실제로 윤주화 사장을 영입한 것은 이렇다할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커다란 실패'로 마무리됐다. "삼성전자의 유전자를 삼성물산 패션부문에 심겠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착각이었던 셈이다.
또한 업계 관행처럼 받아들여지는 '미투 상품' 문제에서 삼성그룹은 경쟁사들에 비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빠른 디자인과 생산 유통을 위해서는 비슷한 제품을 적당히 짜깁기해서 내놓는 '편법'을 부려야 하는데 삼성의 이미지에 먹칠한다는 이유로 절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업계에서는 암묵적으로 서로 허용하는 선에서 경쟁사의 제품을 참고해서 '미투 제품'을 내놓는데 삼성이라는 브랜에서는 불가능한 일어었다. 결과적으로 디자이너들이 크게 위축됐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에잇세컨즈'는 출범 첫 해에 표절 시비에 휘말렸는데 국내 한 디자이너 브랜드 '코벨'의 양말 디자인과 색상을 그대로 베껴 출시했다는 지적을 받으며 논란이 제기됐다.
삼성물산에서 '에잇세컨즈'를 출시할 게 아니라 자회사를 만들어 '투자'만 하고 그 회사에서 독립적으로 SPA 브랜드를 내놓는 방식을 택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안타까워했다.
또한 점포 출점에서도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실수를 연발했다. 사실 출시 초기에 무리하게 점포를 확장하면서 입지 여건이 좋지 못한 자리에 부실 매장을 내면서 악순환에 빠졌다.
목이 좋은 곳에 출점을 해서 제품 판매와 회전율을 높여 소비자들의 정확한 '피드백'을 받아서 제품을 출시해야 한다.
그런데 '파리만 날리는 매장'에 무리하게 출점한 결과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정확한 '피드백'을 받지 못해 제품의 문제인지 유통의 문제인지 정확히 분석할 수 없었던 셈이다.
이런 가운데 권오향 전무 마저 '에잇세컨즈'를 론칭한 이후 회사에서 퇴사 하면서 방향과 중심점이 사라져 7년차 브랜드임에도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2년 론칭한 '에잇세컨즈'는 2013년 1,200억원, 2014년 1,300억원, 2015년 1,500억원, 2016년 1,700억원으로 '거북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도 1,800억대에 머물면서 1조 2,000억원을 넘긴 유니클로와 2위 브랜드 스파오(3,200억원)와 3위 탑텐(2,000억원)에도 뒤진 4위에 그쳤다.
문제는 부진한 국내 실적을 만회하려고 2016년 추진한 '에잇세컨즈'의 중국 진출도 기대치에 턱 없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에잇세컨즈'는 중국 상하이 시장에서 지난해 2개의 매장을 운영해 124억원의 당기 손실을 입었다. 빅뱅의 '지드래곤'을 모델로 내세워 대규모 광고와 마케팅을 진행했지만 '사드 파문'까지 맞물려 중국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이런 가운데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전통적 경쟁사인 LF(구 LG패션)에 비해서 차세대 성장 엔진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모바일과 온라인 환경에 최적화하는 플랫폼 전환 측면에도 LF 등 경쟁사에 비해 크게 밀렸고, 프리미엄 브랜드 마저도 국내 소비자들에게 외면 당해 엠비오 등의 브랜드는 철수하기도 했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사실상 자신들의 성공 공식에만 집착한 나머지 미래에 대한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며 "관료조직처럼 비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지금의 조직 운영을 바꾸지 못하면 '대마불사'라는 신화는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패션업계 관계자는 "'에잇세컨즈' 초기 론칭 때의 품질 및 디자인과 달리 지금은 차별성도 품질도 떨어졌다"며 "5년 전 매장을 봤을 때와 지금 느낌은 '잘 꾸며진 나이키 매장이 ABC마트로 변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삼성물산 관계자는 인사이트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글로벌과 비교했을 때 부진하다는 것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며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잘하고 있는 시그널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