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지혜 기자 = 올해로 광복 73주년을 맞았다.
대한민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고 조국을 되찾은 것을 기념하는 날로 '광복절'은 온 국민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일본의 압제에 저항하며 독립운동에 앞장선다는 것은 당연한 일 같지만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도 권력 뒤에 숨지 않고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현한 의로운 기업들이 있다.
광복 73주년을 맞아 대가없는 희생을 감수하며 어두운 시대상황 속에서도 희망의 불을 밝힌 기업들을 소개한다.
1. LG그룹
LG그룹의 창업자인 구인회 회장은 중경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그는 1942년 7월 독립운동가인 백산 안희제 선생의 부탁을 받고 아무 조건없이 1만원을 지원했다. 현재 가치로 1억 4천정도다.
수배중인 안희제 선생에게 자금을 전달하는 것은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위험한일이었지만 구인회 회장은 "당할 때 당하더라도 나라를 되찾고 겨레를 살리자는 구국의 청에 힘으 보태야겠다"며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LG그룹은 현재도 독립운동가 집안 무료 개보수, 윤봉길 의사기념관 개보수 공사, 문화유산 보존 사업 진행 등 활동을 이어가며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을 위한 복지에 힘쓰고 있다.
이번 광복절에도 LG그룹 계열사인 LG하우시스는 도산 안창호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기념관의 보수공사를 진행했다.
2. 동화약품
동화약품의 대표 제품 '까스활명수'를 개발한 민병호 선생의 아들 민강 동화약품 초대 사장도 나라를 되찾기 위해 힘쓴 것으로 유명하다.
민강 동화약품 사장은 까스활명수를 팔아 얻은 수익으로 임시정부에 자금을 대는 등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또 동화약품본사는 1920년 상하이 임시정부의 연락책이기도 했다.
민강 사장은 독립운동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두 번의 옥고를 치러야 했고 끝내 숨을 거뒀다.
동화약품은 민강 사장을 포함해 독립운동가 3명을 배출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5대 사장 윤창식 선생, 윤광열 명예회장까지 독립운동에 참여한 동화약품은 명실상부한 '민족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3. 교보생명
교보생명 창업자인 신용호 집안은 가족 전체가 독립운동에 몸바친 집안이었다.
그 자신은 물론 아버지를 비롯해 형들까지 4형제가 모두 독립운동에 뛰어드는 바람에 늘 일제에 쫓겨다녀야 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막대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신용호 회장은 민족시인 이육사와의 교류도 잦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용호 회장은 20세에 중국에서 이육사와 운명적으로 만나 사업을 통해 독립운동을 돕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는 자신에게 민족자본가가 될 것을 당부한 이육사 시인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으며 일제치하의 고통과 분함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교보생명을 창업하고 키우게 됐다.
4. GS그룹
GS그룹 허창수 회장의 아버지 허준은 만주 독립운동의 자금줄 역할을 한 '백산상회'를 공동 설립한 인물이다.
'백산상회'는 독립운동 전체 자금의 60%가량을 지원했던 곳으로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영리 기관으로 위장했으나 실제로는 독립운동의 국내 연락 및 자금 공급 역할을 했다.
또 그의 할아버지 허만정 선생도 일제 몰래 독립운동을 꾸준히 지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GS는 이번 광복절에도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독립운동가 알리기에 앞장선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는 국가보훈처와 손잡고 '독립운동가 기억하기 캠페인'을 진행한다.
8월 한 달간 모든 도시락에 '독립운동가 알림 스티커'를 부착함으로써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알리고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의미에서 이번 캠페인을 진행하게 됐다.
5. 유한양행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가 평생을 다해 지킨 신념이다.
9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까지 졸업한 유일한 박사는 1926년 귀국길에 올랐다.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설립하기 위해 한국에서 유한양행을 설립한 그는 미육군전략처(OSS)의 한국고문으로 1946년 미국에서 항일무장독립군 창설을 주도했다.
이번 광복절에도 유한양행은 저소득 국가유공자 가정을 찾아 '안티푸라민 꾸러미'를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