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지금 짝사랑 중인 사람이 읽으면 가슴 먹먹해져 눈물 핑 돈다는 시 한 편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아는 여자'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

개울 물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 거야

잠 없는 난 당신 간지럽혀 깨워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 길

풀숲에 담긴 이슬 담을 병 들고 산책해야지

삐걱거리는 허리 쭈욱 펴 보이며

내가 당신 하나 두울 체조시킬 거야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


짝사랑. 한쪽만 상대편을 사랑하는 일이다. 그 사람이 저를 좋아해 달라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제멋대로 그렇게 됐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방과는 언제든 그 관계가 끝나기 마련이다. 그에게 연인이 생기거나, 그게 아니어도 자연스레 멀어지거나. 이후 당신에게는 아픔만이 남는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Instagram 'saopaulofotografia'


먼 훗날, 언젠가 우연히 만나면 하겠다며 묻어둔 수많은 말. 용기가 나지 않아 미처 하지 못했던 당신의 진심을 그대로 읊은 시 한 편이 있다.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시인 황정순의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 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래 입맞춤하고 싶어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코에 걸린 안경 너머 당신의 눈빛을 읽겠지

눈을 감고 다가가야지, 서툴지 않게 당신 코와 맞닿을 수 있어

강아지처럼 부벼 볼 거야. 그래 보고 싶었거든...


외사랑을 하고 있다면 누구나 꿈꿔보았을 그와의 일상. 아주 나이가 들어서라도, 한 번쯤이라도 펼쳐졌으면 하는 순간. 시는 담담히 이뤄질 수 없는 날들을 노래한다.


해가 높이 오르고

창 깊숙이 들던 햇빛 물러설 즈음

당신 무릎을 베고 오래도록 낮잠도 자야지

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볼까...?

어쩌면 그때는 창밖의 많은 것들

세상의 분주한 것들

우리를 닮아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울 거야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클래식'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당신의 굽은 등에 기대어 울고 싶어

장작불 같던 가슴 그 불씨

사그라들게 하느라 참 힘들었었어...

이별이 무서워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느니...

사랑하기 너무 벅찬 그 때

나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말할 거야


그리고, 그리고 서점엘 가는 거야

당신 좋아하는 서점에 들러

책 한 아름 사서 서재로 가는 거야

난 당신 책 읽는 모습 보며 화폭 속에, 내 가슴속에

당신의 모습 담아 영원히 영원히 간직할 거야


그렇게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어

나 늙으면 그렇게 당신과 함께 살아보고 싶어

나 늙으면 당신과 이렇게 살아보고 싶어


그가 아무리 노쇠해지고 초라해진다 해도, 언제까지나 그를 좋아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지금 당신의 절절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