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나영 기자 = "우리 서로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게 좋을 거 같아"
철석같이 믿었던 연인 사이의 신뢰가 산산이 조각나는 순간이다.
오랜 다툼에 지친 연인이 이별을 고하기 직전 '최후의 보루'로 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별을 경험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이 "생각할 시간을 갖자"라고 하는 것은 곧 '헤어짐'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나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이보다 좋은 핑곗거리는 없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오래 만난 남자친구가 '시간을 갖자'고 하는데 믿고 기다려도 될까요?"라는 제목으로 사연이 올라왔다.
A씨는 얼마 전 오랜 기간 연인으로 지낸 남자친구에게 "시간을 갖자"는 말을 들었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연인이기에 글쓴이는 큰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혼란스러워하는 A씨와 달리 남자친구는 태연히 "너에 대한 마음은 정말 그대로야. 날 믿어줘"라며 "헤어지자고 할 거면 지금 헤어지자고 하지 시간을 갖자고 하겠냐"며 다독였다.
덧붙여 "결혼에 대한 생각의 정리가 필요해서 그래. 딱 한 달만 우리를 위한 시간을 가지자"며 끝까지 설득하려 했다.
그럼에도 A씨는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난 너 없이 살 수 없어"라는 남자친구의 달콤한 말에도 A씨의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A씨는 "지금 헤어지자는 건데 내가 눈치 없어서 못 알아 듣는 거냐"며 남자친구의 의중을 재차 확인했다.
그러자 남자친구는 "너랑 헤어지면 나 응급실 실려 갈거야"라며 "그런 일 절대 없어"라고 못 박았다.
남자친구의 단호한 행동에 A씨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남자친구의 말 그대로 믿고 한 달을 기다려도 될까요?"라고 고민을 털어놓으며 글을 마무리 지었다.
사연이 퍼지자 연인에게 같은 말을 들었던 누리꾼들의 폭발적인 공감이 이어졌다.
대부분은 "글쓴이 없이 살아보기 연습하는 중", "아무 문제 없는데 시간을 왜 갖지?", "헤어지잔 말이네요", "다른 사랑 찾으세요", "절대 기다리지 마세요" 등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이와는 달리 일각에서는 "저는 정말 너무 힘들어서 시간을 갖자고 한 적이 있는데 다시 잘 사귀고 있어요"라며 "서로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요"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전국 20~30대 미혼 남녀 16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무려 66%가 연인에게 "생각할 시간을 갖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남성의 경우는 75.8%, 여성의 경우는 58.5%였다.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말하는 이유에 대해 남성의 37.6%는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여성의 35.7%는 '헤어지고 싶은데 말하기 미안해서'를 각각 1위로 꼽았다.
이어 남성은 '헤어지고 싶은데 말하기 미안해서'가 35.7%로 2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가 16.0%로 그 뒤를 이었다. 여성은 35.7%가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12.4%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시간을 가진 연인이 '다시 잘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해서는 남녀 모두 '관계 회복 가능성 20% 미만'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절반에 가까운 '47.6%'가 다시 잘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봤다.
실제 '관계 회복 가능성 81~100%'를 고른 이는 전체 남녀의 고작 2.0%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시간을 갖자"는 말은 "헤어지자"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그 표현에 차이가 있었을 뿐.
마음이 떠나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 매일 반복되는 다툼에 지쳐서 등 "시간을 갖자"고 말하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어찌 됐든 결론은 이제 당신이 곁에 없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서로 죽고 못 살 정도로 행복한데 "시간을 갖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안타까운 말이지만 연인에게 이 말을 듣는 순간 당신의 사랑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히려 그는 이미 사랑에 종지부를 찍어놓고도 자신이 더 힘든 내색을 하며 '희망고문' 했을 확률이 높다.
관계 개선의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 이상 "시간을 갖자"는 말은 '아름다움 이별'이 하고싶은 이들의 허울 좋은 변명일 뿐이다.
그래도 상대방에게 일말의 희망을 품고 싶다면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만약 당신이라면 어떨지 말이다.
상대방 없이는 잠시도 살 수 없는데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시간을 갖자"는 무책임한 말을 내뱉을 수 있을까.
"시간을 갖자"는 어쭙잖은 말로 연인 없이 살아가는 연습을 해본다는 건 정말 '비겁한 일'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한번 깨진 사랑을 다시 붙이기란 어려운 법이다.
'시간을 갖는다'고 해서 다시 서로에 대한 사랑이 불타오를 것이라는 착각은 하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