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수)

파산 각오하고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한 교보생명 창업자의 '영업 철학'

(좌) 신용호 전 회장, 사진 제공 = 대산신용호기념사업회 / (우)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사진 제공 = 교보생명


[인사이트] 김지혜 기자 = 독립운동에 힘썼던 교보생명 창업자 신용호 회장이 눈을 감던 순간까지도 강조했던 신념이 있다. 바로 '교육의 중요성'과 '인본주의'다.


잦은 병치레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없게 되자 독학을 결심하고 홀로 '1천일 독서'를 감행했다는 일화까지 있을 정도로 신용호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늘 공부에 목말랐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 결국 학업을 포기한 채 독립운동의 길을 걷게 되지만 그는 여전히 책을 사랑했으며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광복' 이후에도 전국의 도시와 농촌을 돌아다니면서 나라가 처한 현실을 직접 보고 나라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신용호 회장.


청년시절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자 / 교보생명 공식 블로그


그 결과 그는 '교육'을 통해 인재를 키우는 게 대안이라는 답을 내리게 된다.


'국민교육진흥'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 구상에 나선 신용호 회장은 교육과 저축을 결합한 '교육보험'을 세계 최초로 창안했다.


교육보험은 자녀가 진학하면 보험료를 모두 돌려받는 방법을 통해 어려운 가정에서도 학생들이 진학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방식의 보험이었다.


이 같은 교보생명의 '진학보험'은 1960~70년대 한국 특유의 교육열과 맞물려 폭발적 인기를 끌었고 전쟁 이후 궁핍했던 한국 사회에서 매년 10만여명에게 학자금을 마련해줬다.


초창기 사옥 / 교보생명 공식블로그


교육보험 혜택을 받았던 수많은 학생들이 상급학교 진학에 성공해 이후 경제 성장의 주역으로 성장했고 학부모들이 맡긴 보험금은 민족자본이 되어 도로, 항만 등 국가 기간산업 구축에 이용됐다.


이처럼 보험으로 민족 교육에 힘쓴 이후 신용호 회장은 다시 그가 사랑했던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배움의 기반이 '책'과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교보문고를 세운 뒤 직원들에게 몇 가지 '영업이념'을 강조했다.


'모든 고객에게 존댓말을 쓸 것(특히 초등학생에게도 존댓말을 쓸 것), '책을 앉아서 노트에 베껴 적더라도 그냥 둘 것', '한곳에 서서 오랫동안 책을 읽더라도 눈치주지 말 것'을 강조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책을 이것저것 구경만 하고 사지 않아도 눈치주지 말 것', '특히 책을 훔쳐가더라도 사람 많은 곳에서 도둑취급하지 말고 조용한 곳에서 타이를 것' 등이 내용이다.


사진 제공 = 대산신용호기념사업회


교보문고를 설립하면서 그는 "남녀노소, 부자, 가난한 자 상관없이 그 누구라도 언제든지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을 일념으로 삼았다.


교보문고의 영업이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교육보험'과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서점 '교보문고'는 이 같은 신용호 회장의 신념 속에서 탄생하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그의 장남 신창재 회장이 그 뒤를 이어받았다. 신창재 회장은 원래 그룹 경영을 이어받지 않겠다며 경영권 승계를 거절했었다.


사진 제공 = 교보생명


그러다 신용호 회장이 암에 걸리며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형성이라는 회사 창립 이념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거듭해서 당부하자 결국 굴복하고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회사를 이어받게 됐다.     


교보그룹 중에서도 교보문고는 사실상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약 5,400억원의 연매출을 올렸지만 영업이익은 55억원으로 그다지 눈에 띄는 실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신창재 회장은 교보문고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신용호 회장의 국민 계몽에 대한 뜻을 이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생전에 신용호 회장은 교보문고의 적자를 걱정하는 임직원들에게 "누구나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는 대가라면 연 500억원 정도는 적자를 내도 괜찮지 않느냐?"라고 말하기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제공 = 교보생명


이러한 뜻을 이어받아 신창재 회장 역시 계절이 바뀔 때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상징인 '광화문 글판'을 내걸기도 하며 시민들과 온기를 나누고 있다.


아버지를 닮아 문학을 사랑하는 경영자로 알려져 있는 그는 시인과 소설가 등 문학계 인사와 교류하며 인문학을 접목한 경영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또 그는 '지속가능한 인본주의적 경영'을 추구하며 사원들이 공감하는 비전의 수립과 의사소통을 경영혁신의 핵심으로 꼽는다.


실제로 교보생명은 이러한 경영 철학을 지닌 신창재 회장 취임 이듬해에 1,400억원 흑자 전환에 성공하기도 했다.


교보생명을 창업하던 때부터 신용호 회장이 늘 강조했던 '배움의 중요성'과 '사람의 힘'을 잊지 않고 이어나가려는 교보문고 신창재 회장의 행보가 주목된다.


광화문 글판 / 사진 제공 = 교보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