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장영훈 기자 =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오는 6일 직접 만나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형국이다.
김 부총리는 지난해 말부터 LG·SK·현대차·신세계 등 4개 그룹을 방문한 직후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런 이유로 김 부총리와 이재용 부회장의 만남에 재계는 물론이고 언론과 시민단체에서도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전통적인 지지층인 진보 진영에서 "문재인 정부가 재벌에게 투자와 고용을 구걸하고 있다"는 여론이 조성되면서 청와대가 '급제동'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수장인 김 부총리가 국내 1등 대기업인 삼성전자의 이 부회장을 만나게 되면 적어도 '100조원' 이상의 투자계획이 발표될 것으로 언론과 전문가들은 관측했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 김 부총리를 만나고 80조원의 투자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초 인도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삼성이 국내에서도 투자를 많이 해달라"는 희망사항을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최근 투자와 고용 지표가 악화된 상황에서 청와대는 물론이고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대기업을 향해 SOS를 치면서 러브콜을 보내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진보 진영에서 이런 '러브 라인'에 대해 반기를 들고 나서면서 상황은 급반전된 것이다.
실제로 현 정부를 지지했던 진보 진영 내에서는 "이렇게 할 거면 과거 정부랑 뭐가 다르냐, 성장과 고용을 재벌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재벌들도 '버티면 정부가 백기를 드는구나'하고 생각한다"고 질타하고 있다.
더욱이 이런 분위기가 유지되면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이니, 경제민주화니, 모두 물 건너간다는 비판을 강력히 제기하고 있다.
그런 여론을 감지한 청와대가 최근 김 부총리에게 "삼성 등 재벌에게 투자와 고용을 구걸하지 말라"는 지시를 직접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한겨레신문은 지난 3일 '청와대, 김동연에 “삼성에 투자·고용 구걸 말라” 제동'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청와대가 김 부총리의 행동을 제지하면서 사실상 경고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김 부총리는 한겨레신문 기사 관련 입장문을 통해 "삼성전자 방문 계획과 관련해 의도하지 않은 논란이 야기되는 것은 유감"이라며 "그동안 대기업을 4차례 만났지만, 투자·고용 계획에 간섭한 적이 없고, 정부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대기업에 의지해 투자·고용을 늘리려는 의도도, 계획도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논란이 크게 일어난 점을 감안해도 정부부처 장관이 언론 기사와 관련해 개인 입장을 발표한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라는 평가다.
그만큼 청와대의 불호령에 김 부총리가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로 풀이된다.
진보 진영에서는 참여정부 때처럼, 이번에도 재벌에 특히 삼성에 포획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보이며 더욱 강력한 재벌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6일 예정된 김 부총리와 이재용 부회장의 면담에서 구체적인 투자 계획은 발표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분배와 고용 및 성장 등 모든 지표가 나빠지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지세력을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