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지혜 기자 = 한국 드라마를 보다 보면 한 회사를 차지하기 위해 재벌가 가족, 친인척들끼리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평범한 서민들에게 TV 속 재벌가의 모습은 그야말로 '그들이 사는 세상'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벌 일가의 '피 튀기는 전쟁'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국내 굴지의 기업들 내부에서도 자주 벌어지고 있다.
기업을 '우리 집안의 것' 혹은 '내가 물려받아야 하는 재산'으로 보는 다수 재벌기업 일원들은 때론 가족을 상대로 소송까지 불사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재벌 총수 일가의 분쟁을 두고 소유와 경영의 분리, 확실한 승계 플랜 마련 등 합리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돈 앞에 부모 형제도 없는 한국 재벌가의 '골육상쟁(骨肉相爭)' 막장 소송전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1. '한진가(家)' 형제의 난
한진그룹은 창업주 고(故) 조중훈 회장이 2002년 별세한 후 현재 장남인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이끌고 있다.
그런데 창업주 사후 2005년에 둘째인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넷째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힘을 모아 장남 조양호 회장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걸게 된다.
이들은 "유산분배 과정에서 장남인 조양호 회장이 우리에게 넘겨주기로 약속했던 비상장회사 정석기업의 주식 일부를 내놓으라"고 주장했다. 정석기업(현 한진칼)은 2005년 당시 그룹의 지주회사였다.
일각에서는 해당 소송에 대해 "정석기업의 재산가치는 재벌가 기준에서 큰 돈은 아니다"라며 고(故) 조중훈 회장 사후에 누적된 형제 간 불신과 갈등이 터진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소송은 조남호, 조정호 회장이 정석기업 주식 일부를 증여받으면서 일단락됐지만 이들 형제는 이후로도 그룹의 사업권 및 재산 분배 등을 둘러싸고 여러 차례 소송전을 벌였다.
2. '효성가(家)' 형제의 난
효성그룹 차남 조현문 전(前) 부사장이 친형 조현준 회장을 고발한 사건이다.
지난 2014년 7월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은 "조현준 사장이 법인의 수익과 무관한 거래에 투자하는 등의 수법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아버지는 물론 형 조현준 회장을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앞서 3년 전인 2011년 아버지 조석래 명예회장과 충돌한 뒤 효성의 불법 비리를 밝히겠다며 회사를 나갔었다.
2013년 2월 조현문 전 부사장은 회사를 완전히 떠나면서 물려받은 7.1%의 효성 주식을 골드만삭스 등에 팔아 지분 관계를 전부 정리했다.
이후 서울중앙지검에서 담당 부서가 두 차례나 바뀌는 동안 사건 수사에는 별 진척이 없는 채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조현준 회장의 혐의는 횡령과 업무상배임, 미인대회 출신 여성 허위 채용을 통한 비자금 조성 등 10여개 사건으로 불어나게 됐다.
검찰은 올해 6월 진행된 2심 재판에서 조현준 회장에 징역 5년, 벌금 150억원을 구형했다.
3. '삼성그룹 VS CJ그룹' 유산분쟁
삼성은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의 장남 고(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이 아버지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서 일찌감치 셋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으로 후계구도가 정해졌다.
그러나 2008년 이른바 '삼성특검'의 조사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에게 창업주로부터 상속받은 4조 5천억원 규모의 차명주식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뒤늦게 형제간 싸움이 일어났다.
자기도 몰랐던 아버지의 유산이 발견되자 2012년 故 이맹희 명예회장은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차명주식에 대한 분할을 요구하면서 유산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에 선대회장의 차녀 이숙희 씨 등이 고(故) 이맹희 명예회장의 편을 들며가세했다.
소송 당시 이들 형제는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주고 받으며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故 이맹희 명예회장은 "건희는 형제지간 불화를 키우고 늘 자기 욕심만 챙겨왔다"며 "가족들에게 한 푼도 안 주겠다는 탐욕이 소송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은 "형은 집안에서 누구도 장남, 장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고 맞섰다.
분쟁은 지난해 2월 이맹희 전 회장이 1, 2심에서 연달아 패소하고 상고를 포기하면서 잦아들었다. 소송전을 계기로 CJ그룹과 삼성그룹은 선대회장 제사를 각자 지낼 만큼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4. '현대가(家)' 왕자의 난
2000년 3월 현대그룹 형제들 간 벌어졌던 경영권 다툼이다.
병환이 깊던 현대그룹 창시자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난 뒤 경영 대권을 차지하기 위해 둘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다섯째 고(故) 정몽헌 전(前) 현대아산 회장이 맞붙었다.
당시 두 형제의 불안한 '공동 회장제'로 운영되고 있던 상황에서 정몽구 회장이 정몽헌 전 회장의 측근을 좌천시키는 보복성 인사를 단행하며 갈등이 표면화됐다.
이후 2000년 3월 현대그룹 사장단들의 모임인 현대 '경영자협의회'에서 정몽헌 공동회장을 단독회장으로 승인했다.
당시 정몽구, 정몽헌 두 회장은 거동이 불편해 병석에 있던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을 기자회견장에까지 불러내 '공개 낙점'을 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서명을 먼저 받았느니, 안 받았느니 문서까지 들이대며 싸우는 모습이 보도되어 현대그룹의 집안 싸움을 전 국민들에게 모두 보이게 됐다.
이후로도 논란을 반복하다가 결국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 별세 후 정몽구 회장이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서비스 등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분가하면서 왕자의 난은 끝을 맺었다.
정몽헌 회장은 현대아산, 현대상선, 현대증권, 현대건설 등 건설·상선 대부분을 차지했다.
소송은 없었지만 현대가 '왕자의 난'은 세간의 이목을 끌며 한국 재벌가의 부끄러운 실상을 보여준 '원조'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