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지현 기자 = 신세계그룹 직원들은 이명희 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이 '판박이' 같다고 입을 모은다. 재계 안팎에서는 정 총괄사장의 경영 리더십이 단연 화제다.
신세계그룹을 국내 최고 유통 명가(名家)로 키운 이명희 회장의 경영 스타일과 딸인 정 총괄사장의 '리더십'이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아버지인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명예회장에게 신세계백화점과 조선호텔 등을 물려 받으며 오빠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비해 '초라한' 유산을 물려 받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그룹에서 계열이 분리된 지난 1997년 이후 이명희 회장이 거둔 경영 성적표는 놀랍다 못해 어메이징한 '역대급 수준'이다.
신세계그룹은 이명희 회장이 평생을 바쳐 일군 '인생 그 자체'라고 말해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듯 이 회장의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녹아든 기업인 탓이다.
이 회장은 자신의 큰 아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딸인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에게 서서히 경영권을 넘겨주면서 '자녀들의 세대'를 준비하고 있다.
아들과 딸이 이끄는 쌍두마차 중에서 전에는 오빠인 정용진 부회장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더욱 많이 받았다. 경영 성과도 오빠가 더 출중했던 게 사실이다.
여동생인 정 총괄사장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재계에서도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던 것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했던가. 뛰어난 인물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세상에 드러날 수밖에 없는 법. 정 총괄사장은 바로 그런 리더십을 가진 경영인이다.
◇ 은둔의 경영자에서 통찰력의 경영자로
사실 이명희 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은 서로 '운둔의 경영자'라는 스타일 측면에서 '모녀(母女)'가 똑닮았다.
이 회장은 지난 1979년 신세계백화점 영업사업본부 이사로 첫 출근한 이후 대외적인 공식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언론 인터뷰 등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자제하는 모습을 취하며 '조용하게 하지만 묵직하게' 신세계그룹을 이끌어 오고 있다.
삼성그룹에서 계열이 분리되고 이마트 등 대형 할인점 사업을 과감하게 투자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은 전문경영인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중요한 의사결정만 내렸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지금도 신세계그룹에는 결제판에 회장의 서명을 받는 자리가 없다.
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가르침대로 "누군가에게 맡겼으면 전적으로 신뢰하고 서류에 사인하려고 하지 말라"는 유언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이 회장이 선대 회장인 이병철 명예회장에게 받은 교훈은 그대로 손녀인 정 총괄사장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정 총괄사장도 신세계그룹의 백화점 사업과 면세점 사업을 추진하면서 전문 경영인의 조언에 경청하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리더의 통찰력'은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조언과 고객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중요한 순간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데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통큰 결정을 내릴 때는 '배짱'으로 과감하게 승부수
이 회장과 정 총괄사장은 모두 이화여대를 나왔다. 둘다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꼼꼼한 감수성과 통찰력으로 백화점과 면세점 등 유통업에서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이명희 회장은 지난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대형 할인마트를 직접 경험하고 충격을 받았다. 이후 이러한 사업을 국내 도입하기로 과감하게 결정하고 이마트 문을 열었던 것.
특히 이 회장은 국내 진출했다가 고전을 면치 못하던 세계적 유통기업 월마트를 인수하면서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마트는 당시 월마트코리아 지분 전량을 8천250억원에 인수했고 국내 16개 매장을 모두 이마트로 변경했다. 이후 이마트의 독주는 확고하게 굳었고 지금까지 국내 1등 할인마트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과감한 성격은 딸인 정유경 총괄사장도 그대로 닮았다.
정 총괄사장은 지난 6월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사업권을 두고 '사촌 언니'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맞대결에서 완승을 거뒀다.
시장의 예상과 달리 정 총괄사장은 이부진 사장의 호텔신라보다 더 높은 입찰 가격을 제시하면서 DF1(화장품·향수, 탑승동 전품목)과 DF5(패션·잡화) 사업권을 싹쓸이 했다.
또한 명동과 강남 등 시내 면세점을 잇달아 개장하면서 기존에 백화점 중심의 사업을 면세점 사업으로 확대해 미래의 신성장 동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앞서 정 총괄사장은 신세계인터내셔날을 통해 지난 2012년 '비디비치'를 인수하면서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수년 동안 적자를 봤지만 뚝심 있게 사업을 진행한 결과 5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하면서 신세계그룹의 '뷰티' 사업의 가능성을 열었다.
◇ 경영권 승계 등 향후 남은 과제도
이명희 회장은 이제 70대 중반의 나이로 경영 현장에서 사실상 후선으로 물러난 상황이다.
그 빈 자리를 아들 정용진 부회장과 딸인 정 총괄사장이 채우고 있다.
현재 신세계그룹은 아들인 정 부회장이 이마트와 스타필드 등을 물려받고, 딸인 정 총괄사장은 백화점과 면세점을 이어받는 것으로 '교통정리'를 했다.
이 회장이 보유한 이마트와 신세계 등의 지분은 무려 1조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 만큼 상속세만 5천억원 이상을 내야하는 상황이다.
정상적으로 상속세를 내고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겠다는 신세계그룹의 입장은 오래 전부터 변함이 없다. 경영권 승계는 그렇게 순조롭게 합법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시장에서는 '아들'과 '딸'이 이끄는 신세계그룹의 진정한 '승자'는 누가될지 벌써부터 관심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 점수를 놓고 보면 팽팽하게 맞서는 모양세다.
한마디로 두 후계자 모두 '합격점'을 받으면서 경영자로서의 리더십을 인정 받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오빠보다는 여동생의 경영 능력에 좀더 점수를 주는 분위기인듯 싶다.
이렇듯 호사가들은 이런 저런 말들이 많지만 지금 이순간도 신세계그룹은 뭔가 또 깜짝 놀랄 일들을 조용히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삐에로쇼핑'과 강남의 '초대형 면세점'이 그랬듯 말이다.
이들 남매가 무엇을 들고 나타날지 '소비자'로서 그리고 '출입 기자'로서 그저 조용히 기다리면서 '즐기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