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한 살에 천자문을 떼고 세 살 때 사서삼경을 완독했으며... 어쩌고저쩌고..."
역사 속 위인을 묘사할 때 흔히 쓰이는 표현이다. 종종 세간에 공개되곤 하는 위인들의 어린 시절 자료를 살펴보면 대단해 보이기는 한다. 오늘날 보통의 우리라면 상상도 못 할 한자로 편지를 길게도 쓴다.
여기 조선 제23대 국왕 순조의 아들이었던 효명세자가 쓴 편지가 있다. 지난 2011년 처음 대중에 공개된 것으로, 세자 나이 6세 때 외숙부인 조선 후기 문신 김유근에게 보낸 친필 편지다.
고사리손으로도 한 획 한 획 달필로 써낸 편지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내구승지개탁(內舅承旨開柝) / 즉승심야간기후만중불승희행(即承審夜間氣候萬重不勝喜幸)"
해석하자면 이렇다. "승지 외숙, 열어보십시오. 편지를 받고 승지께서 밤사이 평안히 보내셨다니 기쁨과 다행스러움을 이기지 못합니다"
여섯 살의 안부 인사가 굉장히 의젓하고 근엄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을 한 번 살펴보자.
"이봉당과식지심미(二封唐果食之甚美)/후일우위멱송망망(後日又爲覓送望望)/불비(不偹)"
길고 어려운 한자들은 이런 뜻이다. "두 봉지의 청나라 과자를 먹어보니 너무나 맛있었어요. 나중에 또 보내주세요, 바라고 또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편지를 쓴 효명세자는 실제 날 때부터 대단히 영특하고 재능이 있었던 인물이라고 전해진다. 아버지 순조도 기대를 많이 걸었다. 스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대리청정을 하며 성군으로서의 면모를 뽐냈다.
그런 효명세자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 아무리 왕세자라 해도, 글씨를 잘 써도 아기는 아기였다. 근엄하고 진지하게 시작한 편지의 본론은 결국 과자를 사 달라는 귀여운 청이었다.
이 사랑스러운 서신을 받은 왕세자의 외삼촌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 곧바로 갖가지 사탕과 과자들을 바리바리 부치지 않았을까. 저런 편지를 받고 어떻게 보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