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권순걸 기자 =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최순실씨가 1위이고, 정윤회씨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이던 박관천 경정이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으로 검찰 조사 당시 한 말이다.
이 발언이 언론에 알려지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찌라시에나 나오는 이야기"라며 노발대발했다.
그러나 이 '찌라시' 속의 이야기가 최순실의 미르·K스포츠재단을 통한 기업 지원금 모금, 삼성전자의 후계 승계를 위한 각종 지원 등으로 구체화됐고 결국 박 전 대통령을 첫 탄핵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애에서 퍼스트 레이디로, 이후 18년 칩거 후 1998년 정계에 복귀해 연일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박 전 대통령은 그렇게 무너졌다.
그동안 정치계와 산업계에는 수많은 '찌라시'가 돌았다. 대부분의 '찌라시'가 근거없는 이야기처럼 치부돼 사라지기도 했지만 이번 찌라시는 달랐다.
찌라시는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회장을 불러냈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나 박 전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사실 박 전 대통령의 정치권 등장은 처음부터 화려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애라는 후광을 등에 입고 1998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며 2004년부터 당과 국회에서 차츰 정치적 영향력을 넓혀나갔다
비록 2007년 한나라당 17대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당시 후보에 패하긴 했지만, 이전까지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승승장구했다.
마침내 박 전 대통령은 18대 대선에서 역대 최초 과반 득표·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19년 정치 인생은 40년동안 함께 했던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비참하게 마무리됐다.
끝까지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그 끝은 '구속' 이었다.
비록 '구속=유죄'라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임기 중 탄핵된 첫 대통령이 구속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한국 현대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일련의 사태를 지나오면서 국민들은 박 전 대통령이 느꼈을 자괴감보다 더 큰 자괴감을 느꼈다.
국민들은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권력의 추한 민낯을 그대로 봐 버렸다.
그동안 후진적인 한국 정치의 패거리주의와 밀실 정치, 정경유착의 본 모습은 국민들을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고 국민들은 자기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한 여성의 '꼭두각시'였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전문가들은 기존 정치권의 '적폐'를 청산하지 않는다면 '제2의 박근혜', '제2의 최순실'이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번 최순실 사태로 인한 대통령의 탄핵 사건을 두고 혹자는 '비극적인 사건'이라 표현하지만 한편으로는 '성숙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새로운 대한민국 정치를 위해서라면 이번 기회에 기존의 구태 정치를 뒤엎을 정치권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권순걸 기자 soonguul@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