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더라도 학생들을 살리고 내가 먼저 죽겠다"
2014년 4월 16일 박육근(당시 51) 단원고등학교 2학년 부장교사는 제주도 수학여행을 위해 세월호에 탄 단원고 학생들에게 이같이 외치며 대피를 돕다가 결국 가라앉는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박 교사를 비롯한 '세월호 의인' 교사 4명의 숭고한 희생이 최근 법원 판결문에 사실 그대로 담기면서 세월호 인양과 맞물려 다시금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이들 교사 유족이 국가보훈처 경기남부보훈지청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순직군경) 유족 등록거부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심리한 수원지법 행정2단독 김강대 판사는 생존학생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급박했던 당시 숨진 교사들의 모습을 판결문에 적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박 교사는 배가 기울자 학생들을 데리고 갑판 출입구로 올라와 탈출시킨 뒤 자신도 탈출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다시 물이 가득한 배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학생들에게 '침착하라'는 당부를 거듭하고 구명조끼를 입는 방법을 지도했다.
전수영(당시 25·여) 2반 담임교사는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야 한다"며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급히 끊고 비교적 탈출이 쉬웠던 5층 교사 숙소에서 학생 숙소가 있던 3층으로 내려갔다.
전 교사는 학생들에게 "침착하고 용기를 내라"면서 구명조끼 착용을 지시했지만 정작 자신은 구명조끼를 입지 못하고 3층 출입문 부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3층에서 구조된 선사 조리장은 "학생들을 다 올려보내고 힘이 빠져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앉아있던 여교사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전 교사를 떠올렸다.
그는 그렇게 앉아 남자친구에게 "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있어 미안하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최혜정(당시 24·여) 9반 담임교사 역시 5층에서 3층으로 내려가 학생들을 대피시키고 객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상황을 살피다가 구명조끼 없이 배에 남고 말았다.
최 교사는 학생들을 격려하고자 "너희 내가 책임질 테니까 다 갑판으로 올라가"라고 말하고 많은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SNS에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라는 글을 남겼다.
김응현(당시 44) 8반 담임교사는 박 부장교사처럼 학생들을 갑판 출입구까지 인솔해 대피시키고 자신은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가 "큰 배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고 말하며 학생들이 침착하도록 이끌었다.
김 판사는 이들에 대해 "특별한 재난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이나 안전을 돌보지 않고 학생들의 구조활동에 매진해 업무 수행 중 사망한 군인이나 경찰·소방공무원에 준하는 예우가 주어져야 한다"며 국가보훈처가 교사들의 유족을 국가유공자(순직군경) 유족으로 등록 거부한 처분을 이달 초 취소했다.
한편 세월호는 침몰 1천73일만인 지난 23일 수면 위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인양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참사 3주기 전인 다음 달 초 목포신항에 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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