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평화로운 세상에 사셨으면 하고 바랍니다."
올해 90세의 안점순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에게 8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바이에른주(州) 작은 도시 비젠트의 여정은 각별했다.
14세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은 안 할머니는 이역만리 길을 마다치 않고 달려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열린 유럽 첫 '평화의 소녀상'(이하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했다.
휠체어에 의지한 안 할머니는 소녀상 옆 빈 의자를 자신이 채우고는 옆에 있는 '소녀'를 어루만졌다. 그러고는 "여러분의 힘으로 이런 행사가 마련됐다"라며 감격스러워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머뭇거리면서도 인사말을 이어간 할머니를 참석자 100여 명은 때론 숙연하게, 때론 유쾌하게 지켜봤다. 안 할머니 자신 역시 대부분은 웃음을 잃지 않은 채 흐뭇해했지만, 더러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었다.
이날 제막식은 한국과 독일 양국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인사와 재독 교민이 한데 어우러지는 자리였다.
소녀상이 들어선 비젠트 네팔-히말라야 파빌리온 공원에 가까운 레겐스부르크와 뮌헨뿐 아니라 저 멀리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등지에서 교민들이 모여들었다.
세계 최대의 히말라야 식물정원으로 불리는 이 공원의 헤리베르트 비르트 이사장은 소녀상의 '소녀'를 "순이"라고 불렀다.
비르트 이사장은 "순이야, 지금은 춥지만 2개월만 지나면 공원의 꽃들로 둘러싸이게 될 거야"라며 소녀상 건립을 자축했다.
불교를 숭상하는 비르트 이사장이 공원 땅 일부를 소녀상에 할애한 데에는 레겐스부르크 원불교 교당 등과의 인연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비르트 이사장은 지인들에게도 소녀상을 들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들이라고까지 말할 정도라고 독일 건립추진위원회 관계자가 귀띔했다.
공원이 개장하는 오는 5월에는 독일 언론에 이 소녀상을 널리 소개하는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일부 방송사에선 45분짜리 다큐멘터리로 이 소녀상 관련 소식을 다루려고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르트 이사장의 부인 마르깃 공동 이사장도 "이 소녀상 '순이'는 우리들의 아픔을 기억하게 하고 경멸과 불법행위로 멸시당한 모든 세계의 여성들을 기억하게 할 것"이라며 "소녀상이 세계 곳곳에 세워지길 바란다"고 했다.
시민 모금 등을 통해 성사된 이 프로젝트를 측면 지원한 수원시 염태영 시장은 제막식에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박흥식 기조실장 등 대표단을 보내 독일 건립추진위 활동가와 단체에 감사패를 전달했다.
염 시장은 "소녀상은 비극적 전쟁으로 유린당한 여성의 인권을 세계에 알리고, (그런 역사가)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설치됐다"면서 건립 추진에 크게 기여한 이들에게 사의를 전했다.
이번 소녀상은 좌우 바닥 안내문을 한글과 독어로 병기했다.
"이 기념물을 세우는 뜻은 비인간적 전쟁범죄로 희생된 분들의 넋을 기리며 피해 여성들의 명예와 인권을 올바로 세우는 데 기여하기 위해"라고 적고 "동시에 이 기념물은 평화를 향해 지칠 줄 모르고 외치는 함성이요, 오늘날도 세계 곳곳 전쟁 지역에서 폭력을 당하는 세계 시민들 모두를 기억한다는 표시"라고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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