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동안 악취가 진동하는 축사에서 강제 노역한 지적장애인이 '노예 생활'을 청산, '바깥세상'으로 나온 지 6개월이 지났다.
오랜 기간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곳에서 비정상적인 생활을 했던 탓에 극도의 대인기피증을 보이는 등 사회 부적응 증세를 보였던 지적장애 2급 고모(48)씨였지만, 꿈에 그리던 어머니, 누나를 만난 뒤 빠르게 안정을 회복했다.
삶의 의욕을 되찾은 그는 지금은 누구보다도 배움에 의욕적이다.
지난 7월 극적으로 가족과 재회한 고씨는 기술을 익히고 한글을 배우는 등 사회에서 홀로서기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장애인 직업 재활시설인 청주 '희망 일굼터'에서 일을 시작했다.
고씨는 장애 수당 등 매달 일정 금액을 받고 있고 가해 농장주로부터 1억6천만원의 배상금을 받게 돼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는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되기를 원했다.
일을 시작한 직후 고씨는 낯을 많이 가려 구석에서 아무 말 없이 인테리어 용품을 조립했다.
장애인 30명이 일하는 시설에서 고씨는 작업 속도가 동료보다 2∼3배나 빨랐다.
희망 일굼터 관계자는 "전에 축사에서 주인 눈치를 봐야 하고, 빨리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고씨에게 있는 것 같았다"면서 "그럴 때마다 천천히 여유 있게 해도 된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1997년 여름 소 중개인의 손에 이끌려 청주시 오창읍 축사로 온 고씨는 허름한 쪽방에서 생활하며 소똥을 치우고, 여물을 챙겨주는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히망 일굼터에서 한 달가량 시간이 흐르자 고씨는 더는 작업을 서두르지 않는다. 아무 말 없이 굳은 표정으로 일하던 고씨 얼굴도 점차 밝아졌다. 쉬는 시간에는 동료와 함께 자동판매기 커피를 뽑아 마시면서 어울린다.
축사 생활 시절 단단히 닫아걸어두었던 마음의 빗장을 풀고 비로소 주변과 소통을 시작한 것이다.
지난달 30일에는 희망 일굼터 직원, 동료 근로인들과 함께 영화 관람을 했고, 지난 2일에는 스케이트장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최주희 희망 일굼터 사무국장은 "고씨는 일에 재미를 느끼고 즐기는 것 같다"면서 "처음보다 작업이 안정적이고 정교해졌다"고 전했다.
최 사무국장은 고씨가 생활용품 부품을 포장지에 넣는 일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세밀한 작업이 필요한 전자제품 부품 조립도 가능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집 근처 교회에서 한글을 짬짬이 익혀온 고씨는 오는 3월 청주 모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48살의 적지 않은 나이이지만, 고씨는 지금이라도 한글을 보다 체계적으로 배우기를 원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교사가 주 2회 장애인가족지원센터를 방문, 한글과 숫자 개념 등 특수 교육을 받게 된다.
강금조 청주시장애인가족지원센터 사무국장은 "공공화장실 남녀 구분을 못 하는 모습을 보고 초등학교 입학 의사를 물었는데 고씨가 흔쾌히 응했다"면서 "고씨는 습득력이 빠르고 모든 매사 적극적이어서 학업에도 잘 적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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