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삿갓 아래로 비치는 핏기 없는 하얀 얼굴과 검은 두루마기, 그리고 가차 없는 사망선고.
tvN 드라마 '도깨비'의 이동욱(36)은 이러한 전통적 저승사자상(像)과 닮은 듯 완전히 다르다.
'올블랙' 차림과 창백한 얼굴은 옛것 그대로지만 그의 눈빛과 말, 행동에는 인간사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다.
연기경력 18년 차의 이동욱은 한 회 안에서도 도깨비 역 공유와의 브로맨스, 써니 역 유인나와의 코믹 로맨스, 전생에 왕이었을 때의 회한 등 인간 못지않은 다양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엮어내며 호평받고 있다.
◇ 유머도 사랑도 일도 순수한…처음 만나는 저승사자
이동욱이 연기하는 저승사자는 그의 얼굴만큼이나 도화지 같다. 백지 같은 무표정을 유지하지만 의뭉스럽지 않고 매사에 순수하다.
공유의 팬티를 들고 '도깨비 빤스' 노래를 부르며 놀리는 장면, 스마트폰을 잘 쓸 줄 몰라 써니의 이름을 '선희아니고ㅅ서니'라고 저장하거나 전화기를 귀에 대고 영상통화를 시도하는 장면 등에선 '코믹 저승사자'가 된다.
또 써니 앞에선 수줍어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써니가 질문을 던질 때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답을 꼭 줘야 한다는 책임감에 밤새 고민하는 장면 등에선 '로맨틱 저승사자'로 변신한다.
일터에선 프로페셔널함에 인간미까지 갖춘 '에이스 저승사자'다. 망자에게 죽음을 고하며 정성껏 '망각의 차'를 대접하거나, 선한 사람에게는 이승에서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악한 사람에게는 일침을 가하는 모습이 그렇다.
죽음을 선고받은 정신과 의사에게 써니와의 일 등 복잡한 심경을 상담하는 모습에선 인간보다 인간다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무표정에도 여러 감정을 담아내는 저승사자를 연기하기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18년간 착실히 쌓은 내공과 김은숙 작가도 인정할 만큼 성실한 캐릭터 연구를 통해 이동욱은 저승사자 연기의 새 지평을 열었다.
◇ 전생 사연 나오며 원숙미까지…'3초 눈빛' 화제
드라마 초반 코믹과 로맨스를 넘나들던 이동욱은 중반부부터 전생의 사연이 공개되면서 원숙미까지 보여준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저승사자는 전생에 고려시대의 왕 '왕여'였다. 특히 도깨비의 전생이었던 무신 김신의 여동생(김소현 분) 김선을 왕비로 맞았다가 그녀를 죽게 한 사연을 간직했다.
이동욱은 아직 전생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일부 단서들만 발견한 채 괴로워하는 저승사자의 모습에 더해, 10회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왕의 오랜 회한을 엔딩 컷 3초만으로도 완벽하게 표현해 극찬을 받았다.
탄탄한 연기력 덕분에 이동욱은 도깨비와 도깨비 신부(김고은) 간 러브스토리라는 이야기 메인 줄기에서 뒤처지지 않는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집안에서 식사할 때 김고은을 가운데 두고 공유의 맞은편에 앉아 당당히 '삼각편대'를 이루는 모습이나, 시청자들이 공유와 김고은의 로맨스보다 공유와 이동욱의 브로맨스에 더 설레기도 하는 현상은 이동욱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이동욱은 2005년 SBS '마이걸'에서 젠틀하지만 사랑엔 서툰 설공찬 역으로 큰 인기를 끈 이후 크게 각인되는 캐릭터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지치지 않고 묵묵히 쌓은 내공으로 12년 만에 설공찬을 뛰어넘는 '인생 캐릭터'를 얻게 됐다.
◇ 올블랙 패션도 다양하게 소화…이국적 마스크와 조화
키 184cm의 긴 컴퍼스를 자랑하는 이동욱은 칙칙할 수도 있는 저승사자의 올블랙 패션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다.
짙은 쌍꺼풀에 큰 눈, 뚜렷한 이목구비로 이국적인 마스크를 가진 그는 검은 페도라와 별 장식도 없는 긴 검은 코트도 세련되게 보이게 하는 재주를 뽐낸다.
또 일을 나가지 않을 때는 과감한 무스탕 외투나 편안한 캐주얼 패션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제 후반부로 달려가는 도깨비를 두고 시청자들은 도깨비와 도깨비 신부 간 해피엔딩만큼이나 저승사자가 전생을 기억해낼지, 전생에서 써니와 못다 한 사랑을 이룰지에 큰 관심이다.
도깨비 측이 8일 "예측불허 스토리 전개를 지켜봐 달라"고 예고한 가운데, 이동욱이 또 어떤 팔색조 매력을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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