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전준강 기자 = "박근혜의 말은 박근혜의 말로 완벽하게 반박이 가능하다"
'박적박'. "박근혜의 적은 박근혜"라는 말로도 표현되는 이 단어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할 때 가장 많이 통용되는(?) 말 가운데 하나다.
어딘가 모순되는 듯한 이 말은 박근혜 대통령이 뭔가를 할 때를 자세히 보면, 과거에 그 자신이 했던 발언과 완전히 반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나온 말이다.
가령 2014년 '국민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며 담뱃값 2,000원 인상을 강행했는데, 2005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소주와 담배는 서민이 애용하는 것 아닌가, (담뱃값 인상으로) 국민이 절망하고 있다"며 노무현 정부가 500원 인상 정책을 극렬히 반대했던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박적박'은 간략히 몇 가지로 요약하기 쉽지 않을 만큼 넘쳐난다. 통찰과 고민 없이 생각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간 보여준, 자신이 했던 과거의 발언을 뒤집는 말과 행동을 7가지 모아봤으니 함께 살펴보자.
1. '국정교과서' 반대
노무현 정부 시절, 한나라당 대표를 역임하고 있을 때 "어떤 경우든지 역사에 대해 정권이 재단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5년 '역사 국정교과서'를 강행했고, 최근 발표했다. 역사학과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졌지만 박근혜 정부는 '올바른 역사관'을 이유로 들며 밀어붙였다.
당시 박 대통령은 "바른 역사 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 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2. '제왕적 대통령' 비판
2002년 한나라당의 총재가 이회창이던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제왕적 총재는 제왕적 대통령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1인 지배 정당을 종식해야 한다"고 말하며 한나라당을 떠났다.
놀랍도록 촌철살인이다. 하지만 2012년 총선 당시 당의 모든 권력을 쥐고 있던 박 대통령은 '공천 학살'을 자행했고, 대통령이 된 뒤에는 여느 때보다 '제왕적 대통령'으로 군림했다.
3. '국회 선진화법' 예찬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표이던 시절, '국회 선진화'법이 꼭 필요하다면서 '무조건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하지만 자신이 밀어붙이던 '경제 활성화', '노동개혁법'이 국회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자, 국회선진화법을 무시하고 '1천만인 서명 운동'을 자신이 먼저 서명하며 국회를 우습게 만들기도 했다.
4. '표현의 자유' 예찬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전 '국정원 여직원' 사건 뒤 '대선 후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대통령 비방하는 댓글 하나만 달아도, 컴퓨터 내놓으라고 폭력정치, 공포정치를 하지 않겠나"라고 비판했다.
일본 언론 산케이 신문의 가토 다쓰야 서울 지국장이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에 대한 칼럼을 쓰자 검찰에 소환까지 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
5. '무상 보육' 뒤집기
박 대통령은 취임 전 "0~5세 아이를 기르는 비용은 국가가 책임지겠다. 보육사업처럼 전국 단위로 이뤄지는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누리과정'은 법적으로 장치가 마련된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교육청의 의무사항이니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고 압박하며 정부의 일을 지자체에 미뤘다.
6. '부패 척결 의지' 뒤집기
대통령 업무를 보던 2014년 2월 5일 국정평가 종합업무보고 시간, 박 대통령은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진돗개 같은 정신으로 부패를 척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9월 22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이라며 부패에 대한 의혹 제기를 찍어 눌렀다.
7. '증세 없는 복지' 뒤집기
대선 전 문재인 당시 후보와의 토론에서 '증세 없는 복지'를 강조했던 박 대통령.
그 많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겠느냐는 상대 후보의 비판에 "그래서 내가 대통령 되겠다는 것 아녜요?"라고 까지 말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증세'를 단행했고 '복지'에는 등을 돌렸다.
정치권이 비판한자 박 대통령은 "한 번도 '증세 없는 복지' 직접 말한 적 없다"고 변명했다.
그 덕분에 신조어 '증세, 없는 복지'도 탄생하며 비판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