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 총수 8명이 6일 오전에 열린 최순실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소환됐다.
여기에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 현대차 정몽구, SK 최태원, LG 구본무, 롯데 신동빈, 한화 김승연, 한진 조양호, CJ 손경식 회장이 포함됐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회장도 증인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모두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수백억 원을 지원한 것과 관련하여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증인들이 어떻게 발언하냐에 따라 박 대통령의 뇌물죄 적용이 판가름 날 수 있어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어딘지 낯설지 않다.
정확히 28년 전인 1988년, 우리나라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비리' 사건을 추궁하는 '5공 비리 청문회'가 있었다.
'일해재단 비리'는 1983년 발생한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 유가족을 위해 장학재단을 설립하겠다며 청와대와 전경련이 기업들로부터 598억여 원의 출연금을 받아낸 사건이다.
5공 비리 청문회에는 삼성 이건희 회장, 현대 정주영 회장, 선경(현재 SK) 최종현 회장, 럭키금성(현재 LG) 구자경 회장, 롯데 신격호 회장 등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해당 청문회의 관건은 증인들의 입을 통해 전두환 정권의 압력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었다.
이때 가장 큰 활약을 펼친 인물이 바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당시 초선 국회의원이었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5공 비리 청문회에서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거액을 안 내는게 좋다고 생각했지만 분위기적 강제성 때문에 내개 됐다"는 발언을 이끌어낸다.
즉, 일해재단 기금 마련에 있어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강압이 있었음을 밝혀낸 것이다.
이날 노무현 의원은 기업 총수들을 윽박지르고 나무라기보다 날카롭고 조리있는 질문으로 증인을 압박해 원하는 답변을 이끌어내면서 일약 '스타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
또한 기업 총수들에게 굴하지 않고 "지금까지 정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며 싸워왔던 많은 양심적인 사람들에게 엄청난 분노를 자아낼 가능성이 있다"고 일침해 국민들의 답답했던 가슴을 풀어주었다.
이후 노무현 의원은 '국민의 편에 서서 소신껏 청문했다'는 평을 받으며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현재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이 이번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노무현 의원과 같은 냉철한 질문을 던져 각종 의혹을 낱낱이 파헤쳐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기업 총수들에게 휘말리지 않고 실체적 진실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이 국회의원들의 책무일 것이다.
이에 야당 국조특위 위원실 관계자는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점과 대기업들 역시 대통령을 통해 회사의 어려움을 해결하려 했다는 점을 밝히는데 집중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오는 7일 열리는 2차 청문회에서는 핵심 증인인 최순실 자매와 조카 장시호 등 최씨 일가 3명이 불출석 의사를 밝혀 벌써부터 '맹탕 청문회'가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