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의 판세를 뒤집은 인천상륙작전의 발판을 마련한 '엑스-레이'(X-ray) 작전의 주역인 함명수 전 해군참모총장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
해군은 24일 "제7대 해군참모총장 함명수 예비역 중장이 어제 오후 5시 42분 별세했다"고 밝혔다.
함 전 총장은 엑스-레이 작전을 비롯해 극히 위험한 전투에 서슴없이 뛰어들어 북한군을 응징하고 대한민국을 지킨 역전의 용사였다.
6·25 전쟁 당시 해군 소령으로, 정보감이었던 함 전 총장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한 첩보작전인 엑스-레이 작전을 주도했다.
그는 손원일 당시 해군참모총장의 지시에 따라 인천상륙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엑스-레이 작전계획을 세우고 자신을 포함한 17명의 첩보특공대를 조직했다.
특공대는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던 인천 지역에 잠입해 한 달 동안 북한군 해안포대의 위치와 규모 등 정보를 수집했고 이는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의 지휘 아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엑스-레이 작전 특공대의 활약은 올해 여름 흥행몰이를 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소재가 돼 주목을 받았다.
함 전 총장은 6·25 전쟁을 10개월 앞둔 1949년 8월에는 우리 군 최초의 대북 응징보복작전인 '몽금포 작전'을 진두지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북한군이 미 군사고문단장의 전용 보트를 나포하는 등 끊임없이 도발하자 함 전 총장은 이승만 대통령의 승인 아래 함정 5척과 특공대원 20명을 이끌고 황해도 몽금포항에 침투해 북한 경비정 4척을 격침하고 적 120여명을 사살했다.
당시 함 전 총장은 적진 한복판에서 다리를 다쳐 적의 포로가 될 뻔했으나 전우인 공정식 전 해병대사령관이 목숨을 걸고 뛰어들어 그를 구출한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6·25 전쟁 이후 함 전 총장은 제1전단사령관, 작전참모부장, 한국함대사령관, 해군참모차장 등을 역임했고 1964년에는 제7대 해군참모총장에 임명됐다.
총장 재임 기간 그는 해군 최초로 수송부대를 베트남전에 파병했고 미 해군과의 협상을 통해 해안 방어용 레이더와 고속상륙함 2척을 도입하는 등 해군 전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대한민국 해군의 수장이었지만, 그는 임기를 마칠 때까지 셋방살이를 할 정도로 청렴을 실천해 부하들의 귀감이 됐다. 함 전 총장은 해군이 2008년 건군 60주년을 맞아 군인 정신의 표상으로 선정한 명장 18명에 포함됐다.
해군은 "고인은 전장에서는 물러섬이 없었고 청렴한 군인이었으며 오로지 해군의 발전과 국가 안보만을 생각한 '영원한 바다 사나이'였다"며 함 전 총장을 추모했다.
함 전 총장의 장례식은 해군장으로 거행되며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0호에 마련됐다. 영결식은 오는 26일 오전 7시 삼성서울병원에서 열리고 안장식은 같은 날 오전 11시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제2묘역에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정애 여사(86세)와 아들 함영태 중앙대 교수, 딸 함영주(사위 김영순 세이코사장)ㆍ임주(사위 박광빈 변호사)ㆍ승희(목사, 사위 조형래 베네통 사장) 씨 등 1남 3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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