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음주운전 사망사고 형량 '한국 3년' vs '미국 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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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6일 오후 12시 40분께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의 한 도로에서 서모(71)씨가 만취 상태로 승용차를 몰다 앞서가던 오토바이 운전자 한모(39)씨를 차로 들이받고서 바닥에 넘어진 한씨를 80m가량 끌고 가 숨지게 했다.


당시 서씨의 혈중알코올농도 수치는 면허취소 수준(0.1%)을 훨씬 넘는 0.213%였다.


서씨는 앞선 2013년 음주 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뒤 이듬해 무면허 상태로 또 음주 운전을 하다가 사람을 다치게 하고 다시 이번 범행을 저질렀다.


수원지검은 이 사건 범행을 '동기 없는 살인'과 다를 바 없다고 보고 서씨를 위험운전치사상 혐의로 구속기소, 1심과 2심에서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서씨는 그러나 8월 열린 1심에 이어 지난 16일 2심에서도 구형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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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도 서씨처럼 음주 전력이 있는 운전자가 또다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가 사망사고를 냈다.


캘리포니아주 항소법원은 이 운전자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영국, 일본 등도 사망사고를 낸 음주 운전자를 엄격히 처벌한다. 영국은 평균 징역 5년 이상, 캐나다는 6년 이상을 선고한다.


일본에서는 2008년 음주·과속 운전으로 2명을 숨지게 하고 6명을 다치게 한 운전자에게 검찰이 징역 20년을 구형했고 법원은 징역 16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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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법원이 이들 국가에 비해 음주 운전을 가볍게 처벌하는 이유는 판사 개인이 음주 운전의 폐해나 심각성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거나 관대해서가 아니라 양형기준과 법적 안정성 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 책정을 위해 2009년부터 살인과 뇌물, 성범죄, 강도, 횡령·배임, 위증, 무고죄를 시작으로 현재 20개 주요 범죄의 양형기준을 마련해 놓았다.


양형기준은 판사가 범죄의 법정형 내에서 구체적인 선고형을 정할 때 감경 또는 가중 요소로 이용된다.


뺑소니를 제외한 교통범죄의 양형기준은 사망사고의 경우 기본 구간이 징역 8월∼2년이다.


여기에 심신미약 등 감경요소가 있으면 징역 4월∼1년, 음주 운전 등 가중 요소가 있다면 징역 1년∼3년에 처하도록 규정하다가 올해 5월 15일 이후 기소된 사건부터는 최대 징역 4년 6월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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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씨가 기소된 시점은 지난 4월이어서 1심은 서씨에게 양형기준 내에서 최고형을 선고한 셈이다.


2심 재판부는 이러한 1심의 판단에 대해 "그동안 법원에서 선고해 온 양형 관례와 기준 등에 비춰볼 때 재량범위를 현저하게 벗어나지 않았다"며 양형부당을 이유로 제기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 3년형을 유지했다.


같은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 차이가 큰 형량을 선고할 경우 법적 안정성의 훼손이 우려되는 측면도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관행을 보면 서씨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2심 재판부가 설명한 것처럼 관례나 양형기준을 벗어나지 않는 반면 검찰의 징역 10년 구형은 음주 운전자에게는 처음이다.


그러나 큰 피해를 불러온 음주 운전 사고가 잇따르면서 양형기준이 너무 관대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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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기준은 법원조직법상 법적 구속력이 없고 권고적 효력만 있다는 점에서 재판부가 지나치게 양형기준에 얽매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대법원 양형기준을 거칠게 해석하면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음주 사망사고에 대해서도 징역 4년 6월이 최대"라며 "양형기준을 강화하거나 재판부가 사안에 따라서는 보다 과감하게 양형기준을 넘는 형량을 선고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 관계자는 "사망사고를 낸 음주 운전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양형기준과 법적 안정성 등을 고려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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