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지난 12일 저녁 경남 창원시 우리요양병원.
마산무학여고 학생 9명이 이날 밤 입원 중인 김양주 할머니를 찾았다.
올해 92살인 김 할머니는 이제 40명만 남은 위안부 피해자 중 한 명이다.
꽃다운 학생들은 어쩌면 자신이 꽃임을 잊었을지도 모를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할머니 저희 왔어요. 이번에는 예쁜 1학년 데리고 왔어요. 저희보다 더 예쁘죠."
학생들은 할머니를 바라보며 병실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웃다가 이내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한참을 흐느꼈다.
뇌경색이 와 거동을 할 수 없는 김 할머니는 그런 학생들을 말없이 지켜봤다.
비록 몸은 움직일 수 없고 입도 떼지 못했으나 학생들에게 고정된 시선만큼은 틀어지지 않았다.
백 마디 말보다 서로 마주친 한 번의 눈길이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병실을 찾은 학생들 왼쪽 가슴에는 위안부 소녀를 형상화한 배지가 달려 있었다.
눈을 감은 채 웃고 있는 소녀의 머리 위에 파란 물망초 한 송이가 피어 있는 모양이다.
학생들은 이 배지를 팔아 성금을 마련했다.
이들이 배지를 만들게 된 사연은 올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윤수(18) 양 등 4명은 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뭐라도 해보자는 취지에서 '리멤버'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이들은 우선 위안부 문제부터 다루기로 했다.
세월과 망각에 역사와 기억이 스러지는 게 안타까워 위안부 피해자를 잊지 말자며 배지를 만들기로 했다.
그림 솜씨가 좋은 김조은(18)양이 디자인을 했다.
머리에 핀 꽃을 물망초로 고른 까닭은 꽃말 때문이다.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마세요'다.
배지가 나오자 반응은 뜨거웠다. 지금까지 경남 8개 학교에서 총 1천700개의 배지를 판매했다.
세계 위안부의 날인 지난 8월 14일에는 마산야구장에 경기를 보러 온 관중에게 위안부 소녀 배지 1천800개를 나눠주는 행사도 있었다.
학생들의 취지에 공감한 NC 구단이 위안부 소녀 배지를 한꺼번에 사들인 것이다.
학생들은 이날 김 할머니에게 성금 216만원을 전달했다.
이 성금은 창원에 사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4명의 생필품 지원 등에 쓰일 예정이다.
최근 1학년이 가입하며 회원이 총 9명으로 늘어난 '리멤버' 소속 학생들은 주변 학교를 찾아 위안부 관련 역사를 알릴 계획도 세우고 있다.
조윤수 양은 "위안부와 같은 역사 문제를 안고 가야 하는 게 우리 세대인데 이런 것에 대해 아는 친구가 주변에 많이 없었다"고 말했다.
외교관이 꿈인 조 양은 "발로 뛰며 과거의 아픈 역사를 정확하게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동아리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근 동아리에 가입한 이고은(17) 양은 "좋은 동아리를 만나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직접 찾아뵙고 활동할 수 있어 자부심을 느낀다"며 "막상 할머니를 직접 만나니 친할머니 생각이 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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