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보고 소방관의 꿈을 키우고, 혼자서 차근차근 준비해 당당히 특채 시험에 합격한 믿음직한 친구였습니다. 이제 소방관의 꿈을 펼칠 일만 남았는데…."
5일 고(故) 강기봉(29) 소방사의 실종 소식을 듣고 제주에서 급히 울산으로 온 강 소방사 아버지와 친구 7명의 실낱같은 기대는 하루 만에 비보로 바뀌었다.
다시는 강 소방사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웃으며 대화를 나눌 수도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아버지와 친구들에게 강 소방사는 '듬직한 아들이자 친구'로 기억됐다.
제주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간호학 전공까지 마친 강 소방사는 졸업과 함께 서울에서 간호사 일을 시작했다.
흔치 않은 남자 간호사로 당당히 일하면서 강 소방사는 또 다른 꿈을 갖게 됐다.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염원이었다.
소방관은 그의 아버지가 평생을 바친 직업이기도 했다.
강 소방사의 아버지는 1983년부터 31년간 제주에서 소방관으로 활동하다가 2014년 6월 정년퇴직했다.
아버지는 '제주형 현장출동체계' 개발 등 소방활동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녹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아버지가 퇴직한 이듬해인 2015년 4월 아들 강씨가 신규 소방관으로 임용됐다.
임용과 함께 울산 온산119안전센터 구급대원으로 근무하면서 이제 막 업무에 대한 재미를 붙이고 열의를 높이던 차였다.
5일 울산에 닥친 태풍 '차바'가 강 소방사의 운명을 바꿨다.
그는 전날 "고립된 차 안에 사람 2명이 있는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동료 2명과 함께 회야강변 울주군 회야댐 수질개선사업소 앞으로 출동했다가,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낮 12시 6분께 실종됐다.
당시 100m가량 떨어진 곳에 구급차를 세운 3명의 대원은 종아리까지 차오른 빗물을 헤치며 걸어서 접근해 신고된 차량을 확인했다. 차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다시 구급차로 돌아가던 불과 몇 분 사이 강물이 순식간에 불어나 대원들을 덮쳤다.
강 소방사와 동료 1명은 전봇대를, 다른 1명은 도로변에 있던 농기계를 붙들고 버텼다.
그러나 전봇대에 매달렸던 2명은 힘에 부쳐 결국 급류에 휩쓸렸다.
동료는 약 2.4㎞를 떠내려가다 가까스로 물살에서 탈출했으나, 강 소방사는 끝내 수마(水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울산시소방본부는 5일 오후에 대대적인 수색을 한 데 이어 이어 6일 오전 7시부터 수색을 재개했다.
강 소방사가 실종된 지점부터 회야강이 바다와 합류하는 명선교까지 12.4㎞ 구간을 따라 샅샅이 뒤졌다.
총 437명의 인력과 소방헬기 2대, 경비정 4척, 소방차 24대 등의 장비를 동원했다.
결국 강 소방사는 6일 오전 11시 10분께 실종된 지점에서 하류 쪽으로 약 3㎞ 떨어진 강기슭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주황색 상의, 검은색 하의 등 구조복과 소방대원용 기동화를 착용한 채였다. 실종 당시 쓰고 있던 헬멧은 벗겨져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살아있기만을 염원하던 강 소방사 아버지와 친구들은 오열했다.
빈소에서 사고 당시 현장이 어렴풋이 녹화된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본 강 소방사의 아버지는 "빠져나올 수도 있었는데…"라는 말을 되뇌며 허망해 했다.
이 영상은 물살에 떠내려가던 차량에 잡힌 것이어서 상황을 선명하게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소방관 3명이 전봇대와 농기계 등을 필사적으로 잡고 버티는 장면이 담겨 있다.
친구들도 터지는 울음을 삼키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친구는 "병원에서 남자 간호사로 일하다가 구급대원 특채를 준비해 소방공무원이 된 친구다. 성격이 좋아 친구도 많고, 언제나 성실한 친구였는데…"라며 비통해했다.
강 소방사의 동료들은 "매사에 의욕적이고, 식당 아주머니가 각별히 챙길 정도로 붙임성도 좋은 성격이었다"며 "오늘 강 소방사가 우리 옆에 없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슬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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