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직전 불이 난 70대 노인의 집에 출동했던 소방관들이 사비를 모아 직접 피해 복구에 나서 주변을 훈훈케 했다.
18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인 11일 아침 무렵 서울 송파구 삼전동의 한 오래된 다세대주택의 황모(76·여) 할머니 집에 불이 났다.
황 할머니가 형광등을 켜려고 스위치를 올리자 '파박' 하고 불꽃이 일더니 불똥이 주변으로 옮겨붙었다.
소방관들이 곧 출동했고, 다행히 불은 천장과 바닥을 태우고 곧 꺼졌다. 황 할머니는 외손녀와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다치지 않았다.
명절을 앞두고 화재와 맞닥뜨린 황 할머니는 "불에 타고 그을린 집을 복구할 생각에 막막함 뿐이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황 할머니는 매월 노령 연금 20만원 등 30만원 남짓한 돈으로 근근하게 생계를 꾸려가고 있고, 지병 등으로 소일거리를 찾을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워낙 고령이라 직접 집을 고칠 수도 없는 데다 넉넉하지 못한 경제적인 상황 탓에 목수 등 기술자를 고용해 집을 고치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화재 현장에 출동했던 장형덕 소방경 등은 한눈에 봐도 형편이 어려울 것으로 짐작이 가는 황 할머니를 도울 방안을 궁리했다.
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끝에 추석 명절 선물 겸 뜻이 맞는 동료들끼리 사비를 모아서 황 할머니 집 화재 피해를 직접 복구해주기로 했다.
장 소방경 등 의기 투합한 소방관 7명은 십시일반으로 15만원 가량을 모았다. 드릴과 망치 등 연장을 들고 합판 등 급한 대로 복구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서 황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이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집안 천장과 바닥의 타고 그을린 자국을 닦아냈고, 합판을 박아 천장을 깔끔하게 정리하자 집안은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소방관들은 형광등을 새로 설치하고 너무 오래된 전기 차단기도 새것으로 바꿔 달았다.
황 할머니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려고 줄 게 없어 미안했다"면서 "평소 가끔 먹는 두유 몇개를 찾아서 소방관들에게 내밀었는데 손사래를 치면서 받지 않더라"라고 전했다.
당시 복구에 참여한 이강균 소방위는 "화재 당시 망연자실한 할머니가 딱해보였다"면서 "어머니 같은 연배신데 명절을 앞두고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해 동료들과 복구에 나서게됐다"고 말했다.
황 할머니는 "아들 같은 소방관들이 와서 애써줘서 추석 선물을 받은 것처럼 너무나 기뻤다"며 "나랏돈이 아니라 본인들이 걷은 돈으로 집을 고쳐줬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더욱 고맙고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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