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중순 남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에서는 '혜륜유치원' 개원식이 열렸다.
낯선 이국땅에 세워진 이 유치원 이름은 다름 아닌 현대중공업[009540] 조선품질경영2부에서 근무하는 고계석(51) 과장의 둘째 딸 이름을 딴 것이다.
이 유치원이 지어진 배경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고 과장은 2014년 겨울 경주 마우나리조트 참사로 둘째 딸 혜륜이를 잃었다.
당시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강당 지붕이 붕괴하며 많은 사상자를 낸 이 참사 현장에 대학 입학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던 혜륜 양이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 속에서 고 씨는 '사는 게 꿈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선교사가 돼 평생을 봉사하면서 살고자 했던 딸의 꿈을 대신 이뤄줄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고민 끝에 아이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학교를 짓는 일이 못다 핀 딸의 꿈을 대신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학교를 짓는 데 든 4억여원은 유족보상금으로 받은 6억여원에서 나왔다.
그 결과 총 5개의 교실에 1개의 사무실을 갖춘, 국민소득 3천달러에 불과한 바누아투에서 보기 드문 규모의 2층짜리 국립 유치원이 탄생했다.
교육시설이 열악한 바누아투에 자리한 혜륜유치원은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 한번에 20여명씩 총 50여명의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다. 유치원을 제외한 나머지 교실들은 조만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탄생할 예정이다.
고 과장은 유치원과 학교 건립을 위한 금전적 지원을 했을 뿐만 아니라 혜륜유치원의 마무리 공사에도 직접 참여하고 비품을 일일이 챙겨 넣는 등 바누아투를 여러 번 오가며 유치원 개원에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 과장은 유족보상금의 나머지 2억원은 딸이 입학할 예정이던 부산외국어대학교에 소망장학회를 설립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학생들을 돕는 데 썼다.
딸을 가슴에 묻은 고 과장이 슬픔을 억누르며 조용히 실천해 온 이같은 선행은 현대중공업 직장 동료들에 의해 5일 뒤늦게 알려졌다.
고 과장은 "먼저 간 딸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면서 "별이 된 혜륜이의 꿈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가진 아이들의 희망과 함께 찬란하게 빛나길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는 "아직도 떠난 딸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 전엔 눈가에 눈물이 먼저 스친다"면서 "그럴 때마다 바누아투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떠올려 본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