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기록적인 폭염에 냉방기기 사용량 증가로 전기요금 부담이 크게 늘자 누진제가 적용되는 가정용 전기요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를 대거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올여름 한시적으로 누진제 구간을 50㎾ 늘리도록 했지만, 체감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에 가정용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의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하고 이로 인한 한국전력의 수익 증대분에서 상당 부분을 요금제 개편을 통해 각 가정에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경제계에서는 산업용 전기요금 상승은 제조단가를 올려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시민단체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싼 편이라 인상해야 한다는 반론을 편다.
21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현행 가정용 전기요금은 6단계로 이뤄진 누진제가 적용된다.
100㎾ 이하는 ㎾h당 60.7원을 시작으로, 101∼200㎾까지 125.9원, 201∼300㎾h 187.9원, 301∼400㎾h 280.6원, 401∼500㎾h 417.7원, 500㎾ 초과는 709.5원이 부과되는 식이다.
누진제 최저구간과 최고구간의 차이가 11.7배다.
이 때문에 한 달에 300㎾의 전기를 쓰던 가정이 여름에 냉방기기를 많이 사용해 401㎾를 쓰게 되면 ㎾h당 요금이 2.2배로 늘어나게 된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누진제가 아닌 계절·시간별 요금제다.
여름·겨울철, 전력사용량이 많은 낮 시간대가 비싸고, 봄·가을, 심야시간대가 상대적으로 싼 구조다.
산업용 전기요금(갑Ⅰ기준)은 저압 전력 기준 여름철은 ㎾h당 81원, 봄·가을철은 59.2원, 겨울철은 79.3원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배전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산업용 전기요금의 특성상 가정용 전기요금과 직접 비교는 무리라는 반응도 있지만, 이같은 요금 수준을 근거로 정부가 기업에 특혜를 주고 있다는 비난도 만만치 않다.
경제계에서는 최근 몇 년간 전기요금이 산업용 위주로 인상됐다며 오히려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남정임 한국철강협회 팀장은 "지난해 한전의 산업용 전기 원가 회수율은 100%를 넘어선 109%였다"며 "원가보다 비싼 요금을 물고 있으며 전기요금 상승은 제조단가를 올려 경쟁력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제품 원가 30∼40%를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철강업체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인상되면 후폭풍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김주태 전경련 산업정책팀장은 "2000년 이후 산업용 전기요금은 84%, 가정용은 20% 정도 올랐는데, 기업이 더 큰 부담을 져 왔다"며 "비교적 저렴한 전기요금이 국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 만큼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는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욱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정용과 산업용 전기요금을 단순비교해 더 싼 산업용을 더 올리자고 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며 "산업용 전기 생산 원가보다 비싼 요금으로 기업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면 적당한 수준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다른 주요 국가들과 비교할 때 절반가량 낮은 수준이고 제조단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기 때문에 인상해도 산업계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우리나라 산업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전기요금보다 평균 40∼50% 저렴한 편"이라며 "국내 기업의 제조단가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평균 비율이 1.6%에 불과해 전기요금 인상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는 대신 제조원가에서 전기요금 비율이 높은 몇몇 업종은 정부가 지원하거나 한전이 선별적으로 전기요금을 인하해줄 수도 있다"며 "한전이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해 거둔 이익을 재생에너지 개발이나 미니 태양광 설치 등에 재투자해 원전이나 석탄 화력발전에 치중한 전기생산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기료 논란을 계기로 한국전력이 독점하는 전기공급사업 정보를 공개하고 가정용은 물론 산업용 전기요금을 재산정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공기업인 한전은 전기 제조·판매원가 내역을 공개하고 과연 적절한 요금으로 가정과 기업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며 "나아가 전기요금 산정위원회를 만들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현행 전기요금 체계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한 네티즌은 "저임금 박봉으로 집 장만도 못하는 서민이 절반인데, 바가지 전기세를 부과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다른 네티즌은 "한전이 아무리 민영화됐다고 하지만 수십조원의 영업이익으로 직원 성과잔치, 배당잔치를 하고 있었다"면서 "누진제는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가정용이 왜 요금을 메워줘야 하나", "가정용은 요금 비싸서 아껴 써야 하는데, 기업들은 펑펑 써도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한국전력은 "우리나라 산업용 전기요금은 OECD 평균 대비 80% 이상 수준"이라며 "OECD 국가보다 평균 40∼50% 저렴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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