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8일(목)

돌고래 사는 바다에서 제트 스키 타면 안되는 이유

인사이트연합뉴스


남방큰돌고래 30∼40여 마리가 종종 집단으로 먹이사냥을 하는 제주 성산 앞바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갑자기 나타난 제트스키 한 대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며 돌고래 무리 한 가운데를 그대로 훑고 지나갔다.


물고기를 쫓던 돌고래들은 순간,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혼비백산 달아났다.


제트스키는 다시 방향을 바꿔 동작이 느린 새끼를 데리고 간신히 도망가는 어미를 뒤쫓기 시작했다.


거센 물보라와 함께 수면 위를 '탁! 탁!' 치며 질주하더니 바싹 붙어 헤엄치던 어미와 새끼를 따라잡고는 기어이 둘을 떼어놓았다.


어미를 놓친 새끼 돌고래는 극도의 불안감에 안절부절못했다.


부리나케 새끼 곁으로 달려간 어미는 또다시 덮쳐올지 모를 제트스키를 피해 허둥지둥 먼바다로 달아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인근 제주 바다 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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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사람을 태운 모터보트 2∼3대가 돌고래들을 에워싸더니 손을 뻗어 돌고래를 만지려 했다.


놀란 야생 돌고래들은 꼬리로 수면을 세차게 치거나 물 위로 뛰어오르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돌고래들은 놀이행동의 일종으로 뱃머리 타기(Bow Riding·뱃머리에서 선박이 일으키는 파도를 타며 노는 행위) 또는 점프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몹시 화가 나거나 기분이 나쁠 때 꼬리로 수면을 치거나 뛰어오르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습성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오히려 돌고래들이 자신들을 반기는 줄 알고 더욱 가까이 다가간다.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연구하는 제주대학교-이화여자대학교 돌고래 연구팀의 장수진(35·여)·김미연(28·여) 연구원은 제주 해안 곳곳에서 자연상태의 야생 돌고래를 관찰하며 이 같은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두 연구원은 "해양레저스포츠가 대중화되면서 사람들이 모터보트, 땅콩보트, 제트스키 등을 타고 즐기다가 종종 돌고래를 만나게 되는데 야생 돌고래를 공연장의 쇼 돌고래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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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너무 가까이 접근하려다가 돌고래가 모터보트 스크루에 걸려 지느러미 일부가 잘리거나 찢길 수 있고 제트스키와 돌고래가 충돌할 수도 있다"며 "실제로 모터보트 스크루에 지느러미가 잘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돌고래들이 많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2.5m 크기, 200㎏이 넘는 무게를 지닌 남방돌고래가 공격성이 적게 나타난다고는 하지만 상당한 힘을 갖고 있어 자칫 돌고래와 부딪쳐 해양사고가 날 수 있는 등 해양레저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또 돌고래는 매우 영리해서 먹잇감이 풍부한 훌륭한 사냥장소라 하더라도 사람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방해를 받게 된다면 해당 지역을 다시 찾지 않을 수 있다.


해외에서는 관찰 가이드라인 또는 법을 통해 야생 돌고래에게 방해를 줄 수 있는 모든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미국과 호주 등 돌고래 관광이 활성화된 곳에서는 선박 등을 이용해 돌고래를 관찰하는 행동이 자칫 돌고래들에게 스트레스와 혼란을 주고, 부상과 출산율 감소 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돌고래 접근 방법과 관찰행동을 규정한 가이드라인을 지키도록 한다.


돌고래가 직접 접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돌고래 인근 50m 이내(고래 100m 이내)로 가까이 가거나 이들의 진로를 방해해서는 안 되며, 관찰 시간 역시 일정 시간(30분 내외)으로 제한한다.


특히 돌고래의 야생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먹이를 주는 행동은 엄격히 금지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이 같은 돌고래 관찰 규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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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해양생태계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로 남방큰돌고래를 보호대상 해양생물로 지정, 포획·유통 등을 금지하고 있지만, 선박을 이용한 돌고래 관찰 기준을 따로 만들지 않았다.


불법포획돼 돌고래쇼 공연에 동원됐던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 복순이, 태산이 등이 3년 전부터 지난해까지 차례로 방류되면서 제주에서는 사실상 돌고래 불법포획은 사라진 분위기다.


대신 돌고래 생태관광과 해양레저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돌고래 관찰 기준 또는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수진·김미연 연구원은 "제주는 멸종위기종 남방큰돌고래 110여 마리가 서식하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국내 유일의 장소"라며 "돌고래 생태관광, 해양레저스포츠로 인해 야생 돌고래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일단 도 조례 제정 등 다양한 방법으로 관찰 기준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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