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희(30·경북개발공사)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남편 원정식(26·고양시청)에게 달려가 동메달을 목에 걸어줬다.
원정식은 그런 아내를 꼭 안았다.
"잘했어", "고마워"란 인사가 오갔다.
원정식은 "아내는 울었고 나는 울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윤진희는 8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리우 센트루 파빌리온 2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여자 53㎏급 결승에서 인상 88㎏, 용상 111㎏, 합계 199㎏으로 동메달을 땄다.
"남편이 아니었으면 다시 역도를 하지 않았을 거에요."
윤진희는 리우올림픽 동메달 가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메달을 걸어주고 싶었다.
원정식은 남들은 보지 못하는 동메달 이면의 고통도 안다. 그는 "부상 때문에 고생한 아내가 안쓰러웠다"고 했다.
리우올림픽 동메달은 부부 역사가 함께 만들었다.
◇ 역도로 맺은 인연 = 윤진희는 원정식의 치악중, 한국체대 4년 선배다.
나이 차 때문에 같은 학교에 다닌 적은 없지만, 강원도 원주에서 같은 운동을 하며 자란 덕에 어린 시절부터 친분을 쌓았다.
태극마크를 달고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면서 두 선후배는 연인이 됐다.
선배인 윤진희가 더 빨리 이름을 알렸다.
윤진희는 '역도 황금세대'의 주역이었다.
17살이던 2003년 성인 국가대표로 뽑힌 윤진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원정식은 황금세대를 이어갈 차세대 주역으로 꼽혔다. 그는 2010년부터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원정식에게 윤진희는 "아름답고 믿음직한 사람"이었고, 윤진희에게 원정식은 "나이는 어리지만, 이해심 많고 어른스러운 남자"였다.
둘은 2011년 5월 결혼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원정식과 윤진희는 '2012년 런던올림픽 동반 출전'을 꿈꿨다.
그러나 윤진희가 마음을 바꿔 2012년 초 은퇴했다. 그는 "역도가 싫어졌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니 더 이룰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원정식은 "아쉬웠지만 아내의 결정을 따랐다"고 했다.
결국 런던올림픽에는 원정식 홀로 출전했고, 그는 7위에 올랐다.
둘 사이에는 보석같은 딸 라임(4), 라율(2)이 생겼다. 윤진희는 남편 원정식의 성공을 바라며 육아에 힘썼다.
◇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서 저 위까지 함께 올라가자' = 2014년 9월 22일, 부부에게 악몽이 찾아왔다.
당시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69㎏급에 출전해 동메달을 노리던 원정식은 용상 183㎏을 들다 종아리 근육 파열로 플랫폼 위로 쓰러졌다.
그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고, 들것에 실려 무대 밖으로 사라졌다.
윤진희는 관중석에서 남편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아내 앞에서 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던 원정식의 꿈도 물거품이 됐다.
원정식은 수술대에 올랐고, 길고 고통스러운 재활에 돌입했다. 윤진희는 바로 옆에서 그를 간호했다.
2014년 말, 원정식이 물었다.
"역도 다시 시작하지 않을래."
원정식은 "아내의 재능이 아깝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하고 있었다. 재활을 시작하면서 아내와 함께 훈련하면 더 힘을 낼 것 같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래, 우리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서 저 위까지 함께 올라가 보자."
3년 가까이 바벨을 놓았던 윤진희는 남편의 청을 받아들였다.
다시 바벨을 드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윤진희는 "나도 오랫동안 역도를 하지 않아서 재활하는 선수와 비슷한 훈련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우리 부부 모두 힘겨운 과정을 겪고 다시 플랫폼에 섰다"고 했다.
하지만 둘은 서로 의지하며 버텼고, 리우올림픽 대표로 나란히 선발되면서 4년 전 못 이룬 약속을 지켰다.
2016년 8월 8일, 윤진희가 동메달을 딴 뒤 둘은 선수촌을 산책했다.
"이거 꿈 아니지"라며 서로를 꼬집었고, 가벼운 통증에 '메달의 기쁨'을 실감했다.
둘의 올림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원정식은 9∼10일 사이 남자 69㎏급 경기를 치른다.
아직 부상 후유증이 남아 원정식은 제 기량을 되찾지 못했다.
그러나 원정식은 "아내가 '최선을 다하면 행운이 따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나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윤진희는 고운 눈길로 원정식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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