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역 근처 공용화장실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된 김모(34)씨가 자신이 정신병 환자가 아니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유남근 부장판사) 심리로 5일 열린 2회 공판준비기일에서 김씨는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있다는 취지의 정신감정 결과표와 과거 치료를 받았다는 취지의 진료기록 등을 모두 '증거 부동의'했다.
증거 부동의는 검찰이 법원에 낸 자료가 증거로 쓰이는 것을 형사사건 피고인이 거부할 수 있는 권리다.
특정 자료에 대한 증거 부동의 의견이 인정되면 검사는 증인을 신청하는 등 다른 방법으로 사실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김씨가 과거 또는 현재 자신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자료들을 증거 부동의한 것은 자신이 정신병 환자가 아니라는 취지로 보인다. 그는 지난달 22일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도 "나는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김씨는 또 피해자 가족들이 수사 기관에서 진술하며 작성한 진술조서에 대해서도 증거 부동의 의견을 밝혔다. 유족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진술을 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반면 김씨는 폐쇄회로(CC)TV 영상이나 혈흔, DNA 감정 결과 등 범행과 관련한 자료들은 모두 증거로 인정했다.
검찰은 김씨가 동의하지 않은 자료들을 대체하기 위해 진료기록을 확인해준 의사와 범행 직후 김씨를 정신감정한 전문가, 유족 등을 증인으로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김씨는 첫 재판과 마찬가지로 이날도 변호인의 도움을 거부하고 직접 재판에 임했다. 변호인의 조력을 거부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증거 동의 여부는 변호인이 미리 서면으로 의견서를 내고 법정에서는 취지만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김씨의 경우 검사가 법정에서 168건의 증거 내용을 하나씩 설명하면 김씨가 의견을 말했다.
다만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이 구속 상태이거나 3년 이상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할 수 있는 사건은 피고인 의사와 관계없이 변호인 조력을 받도록 규정돼 국선변호인이 자리를 지켰다.
김씨는 5월17일 오전 1시께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에 있는 한 주점 건물 공용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A(23·여)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구속 기소됐다.
이 사건은 김씨가 여성 피해자를 노려 범행한 사실이 알려지며 '여성혐오' 범죄로 알려졌지만, 검찰은 한 달 가량 김씨의 정신상태 등을 감정한 끝에 여성혐오 범죄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씨가 기존에 앓던 정신질환이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해 악화하면서 범행 전후 피해망상 때문에 여성을 향한 반감이나 공격성을 띠고 있었지만, 무차별적 편견이나 '여성은 무조건 싫다'는 식의 신념 체계가 있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이날 공판준비절차를 모두 마무리했으며 첫 공판은 26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