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오리도 / 꽥꽥 - / 성한 오리도 / 꽥꽥 - / 꽝꽝 언 포크레인 구덩이로 / 뒤뚱뒤뚱 몰려간다'
올해 김영주 시인이 발표한 '오리야, 날아라' 시(詩)는 저희를 보고서 지은 걸까요.
저희는 광진구 세종대학교 캠퍼스 안의 작은 연못, '아사달'에 사는 오리 가족입니다.
처음 듣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희 '세종 오리'는 학교 안에서는 나름 유명인사예요.
저희를 볼 때마다 학생들은 '신기하다', '귀엽다'며 과자를 던져 줍니다. 사진도 찍어요. 아직 털이 노랗고 보송보송한 새끼 오리들은 인기 만점이죠.
해가 지면 아사달 옆 벤치에서 캔맥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며 취업 걱정을 하는 학생도 많아요.
학생들은 요새 '헬조선'이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긴 한숨을 쉬는 학생들을 보면 저희도 안타깝죠. 그래서 일부러 다가가 '오리 궁둥이'를 불쑥 내밀고 흔들며 웃게 하려고도 합니다.
그렇게 저희가 세종대 학생들과 동고동락한 지도 벌써 몇 년째인 지 몰라요. 사실 세종대에 언제부터 저희가 살게 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답니다.
봄이 오기 전에 새 보금자리를 찾아 비행하던 오리 몇 마리가 우연히 여기에 정착했겠지요. 이제는 개체 수가 많이 불어 족히 20마리는 된답니다. 대가족인 셈이죠.
그런데 얼마 전 저희에게 큰 위기가 찾아왔어요.
세종대학교가 아사달 옆 땅에 지상 12층, 지하 5층짜리 초고층 교육시설을 새로 짓기로 한 거예요.
2년 뒤 완공을 목표로 지난달 공사가 시작됐는데, 공사장 바로 옆이 아사달이다 보니 연못 수질이 정말 안 좋아졌어요.
처음에는 먼지나 모래가 많이 날려서 불편한 정도였는데, 지금은 물이 아예 진한 녹색이 됐고 악취까지 나는 상황이에요.
저희는 요새 풀숲이나 도로에 올라가서 지내고 있어요. 정 목이 마르거나 몸이 너무 건조해질 때만 잠깐 아사달을 찾는답니다.
저희가 도로를 돌아다니고 가끔 헤매다가 학교 건물까지도 올라가다 보니, 학생들도 깜짝 놀라며 핀잔을 주거나 '왜 여기까지 왔느냐'며 불편해하더라고요.
몇몇 학생들이 저희 보금자리인 아사달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페이스북 같은 온라인 공간에 문제를 제기해줬어요.
'학교 측이 관리에 나서야 한다', '이웃 학교인 건국대 호수에 잠깐 보내는 건 어떻겠냐' 등 여러 의견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전해 듣기로, 학교는 "자연적으로 생겨난 오리들이기 때문에 학교는 관리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래요.
학생들 얘기를 들어보니 인간 세상에도 요새 일터나 보금자리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많아서 문제라던데, 힘없는 저희도 비슷한 처지 같아요.
처음 여기 올 때는 날아서 왔지만, 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거나 아직 너무 어린 새끼들 때문에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 날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오늘도 공사는 계속되고 있어요. 아직 계획은 없지만, 아사달을 아예 메워버릴 가능성도 있대요.
저희 '세종 오리'는 이제 세종대학교를 떠날 때가 된 걸까요?
초고층 신축 건물이 완공되면 학생들이 더 쾌적하게 공부할 수 있을 테니까, 저희와 아사달은 없어져도 괜찮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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