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일부 고등학교가 행정 편의를 이유로 수업료 납입 영수증을 교실에서 일괄적으로 나눠주는 것으로 확인돼 학비지원 대상 학생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학비지원 대상 학생의 경우 국가가 수업료를 대신 내기 때문에 수업료 영수증이 없는데, 교실에서 이 영수증을 배부하다 보면 간접적으로 학비지원 사실이 노출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23일 경기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수원 A고등학교는 분기별로 1년에 4번 수업료 34만2천여원(1급지 도심지역 기준)을 받은 뒤 학생과 학부모에게 공과금 납입 영수증을 배부하고 있다.
회사에서 자녀의 학비를 지원하는 경우 납입 영수증을 근거 자료로 삼기 때문에 이를 필요로 하는 학부모가 있기 때문이다.
행정실 직원이 출력한 영수증을 각 반 출석부가 담긴 상자에 넣어 두면 담임교사가 교실로 가져가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국가로부터 수업료를 지원받은 학생은 받을 영수증이 없어서 친구들이 영수증을 받을 때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게 된다는 점이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도 자신이 '지원 대상자'임을 친구들에게 적나라하게 알리게 되는 셈이다.
학교가 영수증을 일괄 배부하는 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행정 효율성 때문이다. 필요한 학생이 신청할 때마다 출력해 주는 것보다 한 번에 뽑아주는 게 편리하다는 설명이다.
결국, 학교가 업무 효율성만 따지다 보호해야 할 학생들을 부당한 '인권침해'로 내모는 꼴이다.
이런 차별적 영수증 배부 방식은 A고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원의 또 다른 B고등학교 역시 수업료 납입 기간이 되면 가정통신문으로 '이체된 공납금 영수증은 배부 일자에 맞춰 일괄적으로 학생 편에 보내드립니다'고 안내하고 있다.
B고교 관계자는 "저소득 학생뿐만 아니라 수업료 미납이나 연체 학생들도 영수증을 받지 않기 때문에 저소득 학생만 두드러지지 않는다"며 "수업료 영수증 배부 방식에 대한 매뉴얼이 딱히 없다"고 설명했다.
공·사립을 막론하고 수원지역 상당수 학교가 유사한 방법으로 영수증을 납부하고 있는 데도 교육청은 그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학생은 성별, 종교, 나이, 가족형태 또는 가족 상황 등을 이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갖고, 학교는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 경기도 학생 인권조례가 무색할 정도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영수증 배부 방식은 학교 판단에 맡기고 있다"며 "인권침해 요인이 있다면 바로잡겠다"고 해명했다.
수업료 지원대상 학생은 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수급자(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한 부모 가정, 법정 차상위계층, 기타 중위소득 60% 이하 가정 등인데, 경기도에만 6만여 명(전체 고교생 43만3천여 명)이 그 대상이다. 이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치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성남의 한 공립고등학교는 아예 '학비지원대상 학생은 영수증이 발급되지 않는 점 등 여러 사안으로 영수증은 일괄 배부되지 않는다'고 학부모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있다.
하남의 또 다른 고교 역시 영수증이 필요한 학생이 행정실을 찾아오면 발급해주고 있다. 필요한 가정에는 우편물이나 이메일로 영수증을 보내는 것도 한 방안일 수 있다.
모 고등학교 행정실장은 "영수증을 교실에서 한꺼번에 나눠주면 지원대상 학생도 노출될 우려가 있고 사정이 있어 수업료를 내지 못하는 미납 학생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납부를 강요한다는 느낌이 있어 비교육적이라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교육비를 지원하는 건데 이 지원이 낙인이 되어선 안 된다"며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인력이나 예산이 투입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교육 당국이 정확한 지침을 갖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될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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