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월)

젖먹던 영아 피 바로 뽑다가 심정지…병원 3억 배상 판결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연합뉴스


모유 수유 직후 채혈을 받았다가 심정지를 일으켜 뇌손상을 입은 1개월짜리 영아와 가족에게 병원이 수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7부(이창형 부장판사)는 A양(7)과 부모가 서울의 한 사립대학 병원 재단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A양 가족에게 총 3억1천4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A양은 생후 1개월 만인 2010년 1월 기침 때문에 양천구 소재 대학병원을 찾았다가 채혈 직후 무호흡, 청색증 등 심정지를 일으켜 영구적인 장해를 입었다.


대기시간에 모유를 수유받던 A양은 의료진의 손에 이끌려 곧장 채혈을 받았다가 손끝이 하얗게 변하고 팔이 파랗게 되는 등 급격히 상태가 나빠졌다.


응급처치 과정에서 의료진은 A양의 입 안에서 모유를 발견했다. 영아의 경우 수유 직후 자극을 받으면 구토할 수 있고 그 결과 기도가 막힐 우려가 있어 응급상황이 아닌 이상 음식물이 위를 통과하기까지 1~2시간 기다린 뒤 의료행위를 해야 한다.


A양은 심폐소생술 끝에 위급 상황을 넘겼지만 MRI를 촬영한 결과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뇌 일부가 위축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후 A양은 2011년 4월 뇌파검사 결과 간질 진단을 받았다. 2013년 11월 신체감정에선 생후 4년 가까이 지났지만 혼자 걷지 못하고 인지나 발달이 또래보다 크게 떨어져 언어능력이 1세 5~6개월 수준으로 나타났다.


1심은 수유 직후 채혈한 병원의 과실을 인정하면서도 심정지와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A양에게 1천만원, 부모에게 각각 500만원씩 총 1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A양이 심정지에 이르렀을 때 입에서 모유가 관찰된 점 등에 비춰볼 때 의료진이 수유 직후 채혈을 한 과실 때문에 기도 폐쇄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며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또 "채혈 직후 A양이 이상 징후를 보여 어머니가 2차례 알렸지만 간호사가 '괜찮다'며 상태를 살피지 않았고,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자 비로소 확인했다"며 "의료진이 경과 관찰을 소홀히 한 과실도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A양이 채혈뿐 아니라 이미 감염돼 있던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가 원인이 돼 심정지가 일어났던 점 등을 근거로 병원의 배상 책임을 30%로 제한했다.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