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성보미 기자 = 우리는 상식적으로 '내시'를 떠올렸을 때 거세된 남성을 묘사한다. 하지만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내시'는 거세한 남성을 가리키는 호칭이 아니었다.
지난 26일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는 문관의 씨를 말리고 자신들의 세상을 열고자 했던 고려 무신의 난을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최태성, 신병주 등의 패널들은 무신의 난에 얽힌 역사를 파헤치던 중 환관과 내시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거론했다.
고려시대에만 해도 환관은 궁궐에서 임금의 시중을 드는 거세한 남성을 가리켰으나 내시는 아니었다. 내시는 국왕의 총애를 받는 아주 젊고 유능한 문신관료들을 일컬었다.
그랬던 내시라는 말이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환관과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
이는 환관 출신들이 계속 내시가 되면서 이들 사이에 구분이 불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내시와 비슷한 경우로 당시 '다방'이 있었는데 이들은 말 그대로 궁궐에서 마시는 차를 관리하던 관원들을 부를 때 사용했다.
지금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다방'이라는 말의 어원이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