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대학의 재학생과 졸업생이 충격적인 사건의 주인공이 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불거진 '고대 카톡 성희롱'부터 수사가 한창인 '소라넷 사건'까지 모두 명문대 이름이 언급됐다.
삐뚤어진 윤리 의식과 도덕적 타락으로 인한 명문대생의 일탈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뿌리 깊은 학벌 지상주의로 인해 입시 위주의 교육에만 매몰, 인성교육은 뒷전인 현행 교육제도를 비판하고 있다.
최근 소위 'SKY'로 불리는 명문대인 고려대학교 남학생 8명이 카카오톡에서 약 1년간 선·후배, 동기 여학생들에 대한 성적 대화를 나눈 '카톡 성희롱' 사건이 불거졌다.
이들은 "○○○은 다 맛보려 하네", "새따(새내기와 성관계를 뜻하는 줄임말) 해야 하는데", "(새내기 새로배움터에서) 예쁜 애 있으면 (술을) 샷으로 먹이고 쿵떡쿵" 등의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대 성 관련 범죄는 2011년 의대생 3명이 동기 여학생을 성추행해 전원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부터 2013년 한 남학생이 여학생 19명을 2년간 성추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사건까지 끊이지 않았다.
연세대에서도 지난해 10월 한 남학생이 함께 술을 마신 여학생을 성추행했다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어 논란이 일었다. 앞서 같은 해 1월 간부 수련회에서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적도 있다.
이처럼 사회적 비난 소지가 큰 성범죄 말고도, 폭행이나 사기 등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사건에서 명문대생이 등장하는 사례 또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더구나 최소한의 윤리나 도덕은 찾아보기 힘든 충격적인 사건의 주인공으로 명문대생이 등장하는 경우도 많다.
경찰이 수사 중인 국내 최대 음란사이트 '소라넷'의 창립자 A(45)씨 부부는 명문대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서울대, 그의 아내와 또 다른 공범 3명은 서울 소재 유명 대학 출신으로 확인됐다.
앞서 지난해 초 '서초동 세모녀 살해 사건'을 벌인 B(49)씨도 명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문제는 입시 위주의 교육에 매몰돼 인성교육이 등한시되는 교육 현실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대학 입학이라는 목적을 위해 점차 세속적인 도덕이나 규범에는 얽매이지 않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한 성적과 균형 잡힌 인성은 완전히 별개"라며 "오히려 현재의 입시 제도 아래에서 정직함을 근거로 하는 좋은 인성은 학업 성취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컨대 대학 수시 모집을 살펴보면, 도저히 학생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님을 알 수 있다"며 "결국 (사교육 등)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학생은 정직함 등 많은 가치를 포기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대학만 잘 가면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국내 유명 커뮤니티의 대학 게시판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대학 서열을 줄 세운 글이 난립한다.
한 네티즌은 입시 배치표 등을 토대로 "대학 서열 알려준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등 대학교 이름의 앞글자만 따 글을 올렸고, 또 다른 네티즌들은 대학 순서를 뒤바꿔 "이게 개념 서열이다"라며 댓글을 달기 바빴다.
일부는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의 신입생 입시 결과, 졸업생의 사법시험 합격자 수, 대기업 입사자 수 등 통계자료를 올리는 이른바 '훌리건' 활동을 하고, 지방 소재 대학을 '지잡대'라고 깎아내리는 표현을 써가며 비난을 일삼았다.
시민단체에서는 명문대로의 진학이 인생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그릇된 가치관이 팽배하다고 지적한다.
윤리나 도덕에 앞선 '물질'이 뿌리 깊은 학벌 지상주의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있어, '더 좋은 대학에 가야 더 좋은 직장을 얻고, 더 많은 임금을 받게 된다'는 논리로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이 팽배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물질만능주의가 사회적 가치의 기준이 되다 보니 인권이나 민주주의와 같은 것은 그 자리를 빼앗겼다"며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인권이나 도덕, 윤리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져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예컨대 여학생을 상대로 한 성희롱 메시지를 오랫동안 주고받은 고려대 학생들과 같이, 도덕적 감수성이 떨어져 스스로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된 것이란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병폐에 빠지게 된다"며 "질환은 '인식'에서부터 치료에 이르게 되는데 인식조차 못하다 보니 치료 또한 요원한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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