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21일(토)

'군피아'가 장악한 軍골프장…장성·영관급 출신 예비역 독식


연합뉴스

 

현역 군인 대신 간부 배우자나 예비역들이 주로 이용해 본래 설치 목적에서 벗어났다는 지적을 받는 군(軍) 골프장 운영권이 소위 '군피아(군대 마피아)'에 넘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32개 군 골프장의 관리와 운영을 책임진 사장 자리를 모두 장성이나 영관급 출신 예비역이 독식하고 있는 것이다.

 

군 골프장 운영 책임자가 비전문가들로 채워진 까닭에 경영 성과 개선을 기대하기는 애초부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군 출신 사장의 일탈행위가 드러나도 국방부는 '제대 군인 취업보호'를 내세워 외부 공모를 철저히 차단해 폐쇄적 운영에 집착한다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군 주변에서는 군 골프장 운영방식을 과감히 본래 취지에 맞게 바꾸는 등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 장성·영관급 출신이 사장 독식…그들만의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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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국방부에 따르면 전국에는 관리 주체에 따라 국방부 4곳, 육군 7곳, 해군 5곳, 공군 14곳, 3군 공동 2곳 등 모두 32곳의 군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다.

 

군인 체력단련장이라 불리는 이들 골프장의 사장은 관리 주체별로 공모를 통해 임명하는데 국방부 및 각 군은 예비역 또는 전역 예정자에 한해 지원할 수 있도록 제한을 뒀다.

 

'제대 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거, 군 골프장 사장 자리를 제대 군인의 취업 보호를 위한 취업직위로 지정했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국군복지단(국방부) 산하 군 골프장 4곳은 준장∼소장, 나머지 골프장은 영관급(소령∼대령) 예비역이 줄곧 사장을 맡아 왔다.

 

이들의 임기는 관리 주체별로 차이는 있지만 짧게는 2∼3년, 길게는 5년이다.

 

하지만 이들이 골프장 운영에는 비전문가라는 점에서 경영 성과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제 식구 챙기기'에 급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12회계연도 재정사업 성과평가 보고서'를 통해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일정한 범위에 한해 전문 경영인 영입을 제안했다.

 

군 골프장의 경영 성과가 군인복지기금의 재원 확보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문호 개방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군 골프장 운영을 통해 발생한 수익금은 군인복지기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군 장병 복지 개선을 위한 사업에 쓰인다.

 

그러나 국방부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군 골프장 사장 공모 기준을 기존대로 고수하고 있다.

 

◇ 강제추행·모욕…군 출신 사장 일탈행위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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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하복이 생명인 군대 특성상 군인 출신 사장의 강압적 태도는 종종 일탈행위로 이어져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국군복지단이 운영하는 군 골프장 사장인 예비역 준장 A(58) 씨는 지난해 3월 12일 골프장 인근에서 직원 20여명과 회식을 하다가 남자직원 2명에게 1∼2차례씩 강제로 입을 맞춘 혐의(강제추행)로 기소됐다.

 

그는 같은 해 1월 골프장 사장실에서 업무 문제로 한 직원을 문책하던 중 자신에게 대든다는 이유로 욕설을 한 혐의(모욕)도 받고 있다.

 

애초 피해자들의 신고를 받은 국군복지단 감사실은 증거 불충분으로 A씨에게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지만 경찰은 피해자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A씨는 여전히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30여년 간 군에 몸담다 대령으로 전역한 뒤 2013년 육군이 운영하는 군 골프장 사장으로 재취업한 B(57)씨는 1년여 만에 불명예 면직됐다.

 

지위를 이용해 일부 팀의 예약이 취소되면 자신의 지인을 배정하는 이른바 '끼워넣기'를 일삼은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휴장하는 골프장에 직원들을 강제 동원, 지인을 수차례 불러들이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개월 간 군 관용차를 자신의 출·퇴근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결국 B씨의 지나친 요구에 직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 군 감찰부에 의해 모든 비위 행위가 드러났고, 그는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 "운영방식 개선해야…민간 위탁운영도 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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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체력단련을 위해 만들어진 군 골프장이 주로 군 간부 배우자나 예비역, 민간인 등에 의해 이용되고, 사장도 예비역 장교들이 도맡는 것에 대한 국민적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군 골프장이 군인 체력 증진을 위해 도입된 만큼 그 취지에 맞게 운영방식을 바꿔 모든 군인들에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에서는 민간경제 위축을 이유로 지방공단의 골프장을 민간에 이양한 것처럼 군 골프장도 민간 위탁 운영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군인복지기금의 상당 부분은 군 골프장 매출에서 나오는데 그 중 상당액이 골프장 운영에 재투자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군 골프장이 수익을 내고자 민간인을 받아 영리사업을 한다는 비판을 받느니 차라리 민간에 위탁을 하고 일정액의 고정 수입으로 국군 장병의 복지시설 마련에 투자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오창근 국장은 "군인복지기금이 현역 국군 장병의 복지 개선에 우선적으로 쓰여야 한다는 기본 원칙이 깨져서는 안 된다"며 "취지를 벗어난 현재의 운영 방식은 어떤 식으로든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 국장은 "군 시설이다 보니 민간 위탁이 법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게 최선이라면 법을 바꿔서라도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위례시민연대 이득형 이사는 "군인 복지라는 미명 아래 막대한 세금이 일부 장교 출신 등을 위해 쓰이는 것은 잘못"이라며 "모든 군 골프장이 본래 취지에 맞는 시설이 되도록 근본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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