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엄마 죽였다'는 누명 쓰고 정신병원에 8년간 갇힌 아들

나인스토리

 

[인사이트] 권길여 기자 = 전 세계를 뒤흔든 심리 스릴러 극 '엘리펀드송'이 대학로에서 막을 올렸다.

 

'엄마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정신병원에 갇힌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연극은 여의사 로렌스가 갑자기 '행방불명'되면서 시작한다. 

 

실종된 로렌스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15살에 어머니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8년 전 병원에 들어온 청년 마이클이다. 

 

정신병원을 책임지는 원장은 이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마지막 목격자인 마이클을 찾아간다.

 

사실 마이클은 여의사의 실종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대화와 관심이 필요했던 마이클은 '로렌스의 실종사건의 진실'을 아는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

 

병원장은 마이클에게 여의사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지만 청년은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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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끝날 때까지 헛소리만 하던 마이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관객들은 두서없는 마이클의 이야기에 혼란에 빠지지만, 이내 청년의 진심을 깨닫게 된다.

 

'도와달라. 사랑을 달라'고 호소하는 마이클의 무언의 외침과 절절한 눈빛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마이클은 사회에 부적격한 '정신병자'가 아니라 사랑을 애타게 갈구하는 '상처투성이'였을 뿐이다. 

 

마이클은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이 이혼하는 바람에 사랑을 못 받고 자란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아버지는 8살에 딱 한 차례 본다. 

 

그리고 유일한 가족이자 유명 오페라 가수였던 어머니는 '노래가 예전 같지 않다'는 사소한 이유로 15살의 마이클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사랑하는, 아니 사랑받고 싶었던 두 대상의 부재에 철저히 혼자가 된 마이클. 게다가 어머니를 죽였다는 억울한 누명까지 쓰게 된 마이클은 도무지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관객들은 그제야 처절할 정도로 외롭게 살아온 마이클과 대면하고 큰 슬픔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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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연극 '엘리펀트 송'은 자비에 돌란(Xavier Dolan)이 출연한 동명 영화로 더 알려져 있다. 

 

알고 보면 연극이 원작이다. 이 극은 2004년 캐나다 스트랫퍼드 축제에서 개막한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세계 전역에서 사랑받고 있다. 프랑스 토니상으로 불리는 몰리에르 어워드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이 극은 가족의 해체, 소통의 부재, 현대인의 외로움 등 안타까운 현실을 비극적으로 다룬다. 

 

어쩌면 타인의 외로움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을 다룬다고 볼 수 있다.

 

극단적이지만 씁쓸한 현실과 맞닿아 있어 공감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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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철학적인 질문이 많이 나와 심리 드라마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물론 탄탄한 대본이 관객을 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박은석, 고영빈, 고수희, 전성우 등 실력파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엘리펀트송'은 오는 6월 26일까지 서울 대학로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에서 관객을 만난다.

 

권길여 기자 gilyeo@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