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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한국인 위령비에도 꼭 헌화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일본인 뿐 아니라 전쟁과 아무 관계도 없는 식민지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廣島) 방문이 공식 발표된 다음날인 11일 오후 히로시마 평화공원 내 한국인 위령비 앞에서 만난 재일 한인 피폭자 박남주(84)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진주 출신의 재일동포 2세인 박 씨는 71년전인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직접 피해자다.
당시 12살 학생이었던 그는 폭심(폭발의 중심점)에서 1.8km 떨어진 곳의 노면(路面) 전차 안에서 피폭했다. 살아 남았지만 훗날 유방암과 피부암으로 평생을 고생했고 직후 해방을 맞이하고도 폐허가 된 일본에서 교육도 더 이상 받지 못한 채 어려운 생활을 이어왔다.
그럼에도 그는 식민지 강제징용에 의한 것이든, 자발적으로든 일본에 와서 전쟁과 무관하게 살다가 순식간에 죽어간 수많은 한국인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한국원폭피해자대책특별위원회'라는 단체의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일본 시민을 상대로 한 피폭 증언 활동을 계속해왔다.
박 씨는 "히로시마에 당시 조선인이 8만 명 정도 있었는데 그 중 5만 명 정도가 피폭했고, 그후 약 2만 8천명 정도가 귀국했다"고 소개한 뒤 거듭 "오바마 대통령도 전쟁과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이 희생당했다는 사실을 알아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84년 5월25일 당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헌화하는 모습 / 연합뉴스
그는 "나는 원폭 투하때 폭심(원폭이 떨어진 지점)으로부터 2km 이내에 살았고, 지금도 이곳에 그대로 살고 있다"며 "나를 포함한 재일 한국인들이 피폭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일본인들과 달리 피난 떠날 고향이 멀어서 거기 그대로 있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오는 27일 오바마 대통령을 보러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날로 예정됐던 학생 대상 피폭 증언 행사를 연기하자는 연락이 온 것으로 미뤄 경호 문제 때문에 당일 일반인 입장이 허용되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에 오바마와 대화할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피폭자가 일본인 뿐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핵무기는 다시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핵무기의 무서움을 몸소 체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 본인도 핵무기 철폐를 말하는데, 핵무기는 정말 잔혹한 병기다. 너무도 잔혹하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박 씨는 히로시마의 일본인들은 오바마의 방문 자체를 사실상 '사죄'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는 한국인 피폭자들에 대해 한번도 사죄하지 않았다"며 "솔직히 '일본 총리는 왜 한국에 사죄를 하지 않고 미국에만 사죄를 바라는가'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이어 "재일한국인들도 3세, 4세로 넘어가면 조상들의 역사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것 같아 슬프다"면서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할때까지 피폭 증언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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