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곳곳을 가다 보면 애견숍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유리 벽 안 케이스에 있는 작고 귀여운 강아지가 행인들의 발길을 잡는다.
이런 귀여운 강아지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애견숍의 강아지들은 '강아지 공장'이라고 불리는 번식장에서 주로 온다. 번식장은 동물보호단체들이 대표적인 동물 학대 현장으로 꼽는 곳이다.
◇ '애견농장'으로 포장된 '강아지 공장'…사육 환경 '열악'
최근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이 찾은 경북의 한 애견농장은 강아지 수백 마리를 사육하는 곳이다.
도착하자마자 악취가 진동했다. 개 사료가 여기저기에 나뒹굴고 급수 시설도 여의치 않아 보였다.
분만실에 있는 개들은 상대적으로 영양 상태가 좋아 보였으나, 개장 안에 있는 강아지들은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한 듯 퀭한 모습이었다.
꽃샘추위에도 난방 시설을 거의 가동하지 않는다고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말했다.
말이 좋아 애견농장이지 '집단 번식장'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이곳 밀폐된 분만실에서는 어미 개들이 연간 3번 가량 새끼를 그야말로 '생산'한다. 자연상태에서 어미 개들은 1년에 한번 정도 새끼를 낳는다.
이들 어미 개는 작은 철장 속에서 평생을 살며 새끼를 낳다가 죽거나 늙어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이 되어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다.
강아지들의 생활 환경도 열악하다. 경매나 직접 판매를 거쳐 농장을 나갈 때까지 강아지들은 좁은 사육장에서 사료에 의지해 목숨을 이어가야 한다.
건강이 좋을 수 없다. 질병을 갖고 있거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강아지들이 많다.
애견숍에서 사온 애완견이 얼마 되지 않아 폐사했다는 소비자 민원이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당국은 전국 반려동물 번식장이 1천 곳 안팎인 것으로 추산한다. 관련 업계는 4천 개는 넘을 것으로 본다.
정식 등록한 곳은 100개가 채 되지 않는다.
등록 영업장이 이렇게 적은 데는 비용 절감, 세금 회피 등 여러 요인이 있다.
번식장들은 대체로 한 곳에 최소 100∼200마리, 많은 곳은 700∼800마리까지 수용한다.
분뇨 등 오물 처리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곳이 많아 언제든지 전염병에 걸릴 수 있다.
현행법상 사육 면적 60㎡ 이하에서는 가축 분뇨 배출시설을 신고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법망을 피하고자 케이지 내부를 2단, 3단으로 쌓아 사육하는 곳도 적지 않다.
케이지 높이가 낮아 개들이 고개를 제대로 못 드는 곳도 있다.
새끼를 생산하는 어미 개의 수난은 분만 과정에서도 지속한다.
좁은 곳에서 운동을 못 하다 보니 자연분만이 어려운 몸 상태가 되기가 쉽다. 이들 어미개는 제왕절개를 반복한 뒤 더는 새끼를 낳지 못하면 용도 폐기돼 싼값에 식용으로 팔려나가기도 한다.
◇ '동물 학대'에 행정 기관 무관심도 한 몫
집단 번식장에서 이렇듯 동물 학대가 만연한 데는 행정 기관의 무관심도 큰 몫을 한다.
시설, 관리인 수 등 법정 요건만 갖춰 문을 연 뒤에는 사실상 관리 사각지대로 남기 때문이다.
기초자치단체가 관리 감독권을 갖고 있지만, 인력 부족 등으로 현장 점검은 기대할 수 없다.
민원이 발생하면 현장을 점검해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하는 게 고작이다.
행정처분도 정식 등록된 사업장에나 해당한다. 전국적으로 수천 개에 달하는 불법 번식장은 손을 쓰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렇다 보니 번식장 동물이 감염병에 걸리거나 폐사 후 아무렇게나 처리돼도 제대로 단속할 수 없다.
동물보호 업무를 관장하는 정부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에도 관련 사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2명 정도에 불과하다.
최일선에 있는 시·군·구 직원들 역시 대체로 1명이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그나마 최근에는 기피 업무가 됐다. 주택가 근처에 불법으로 들어선 번식장 때문에 소음, 악취 등 민원이 잇따르기 때문이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사단법인 카라(KaRa) 관계자는 "국내 번식장은 식육견을 키우다 애완견 사육으로 전환한 경우가 많다"며 "번식장 대형화, 애정 결핍으로 인한 동물 학대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애견 등 반려동물을 찾는 소비자와 행정 기관이 관심을 기울여야 강아지 번식장의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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