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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지폐에 여풍(女風)이 거세다.
최근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이 새로 발행될 지폐의 얼굴로 탁월한 업적이나 자취를 남긴 자국 출신의 여성 인권운동가나 작가, 과학자 등을 선택했다.
여성 인물의 초상화를 넣은 스코틀랜드 새 지폐 견본 / RBS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는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연내 새로 발행될 5파운드 지폐의 모델로 스코틀랜드의 소설가 겸 시인 낸 셰퍼드(1893∼1981)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스코틀랜드는 영국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파운드화를 쓰지만, RBS와 스코틀랜드은행, 클라이즈데일은행 등 3곳에서 자체 지폐를 발행할 수 있다.
RBS는 이에 앞서 지난 2월에는 투표를 통해 내년에 발행될 10파운드 지폐의 모델로 과학자 메리 서머빌(1780∼1872)을 선택하기도 했다.
낸 셰퍼드와 메리 서머빌은 영국 여왕을 제외하고 RBS의 지폐에 등장하는 첫 여성이 된다. 클라이즈데일은행이 발행하는 지폐에는 1997년부터 선교사 메리 슬레서(1848∼1915)가 등장한 바 있다.
해리엇 터브먼이 들어갈 미국 20달러 지폐 견본 / 연합뉴스
미국도 1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을 지폐의 얼굴로 내세웠다.
최근 미국 재무부가 2030년부터 발행될 20달러 지폐 모델로 선정한 인물은 노예 출신 흑인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1820년경∼1913년)으로, 현재 20달러 모델인 앤드루 잭슨 전 대통령을 뒷면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미국은 5달러와 10달러 지폐의 뒷면에도 여권 운동가 수전 앤서니와 엘리자베스 스탠턴, 성악가 메리언 앤더슨 등 여성 인물을 대거 등장시키기로 했다.
제인 오스틴이 들어갈 영구 10파운드 지폐 견본 / 연합뉴스
이와 함께 영국은행도 2017년부터 10파운드 지폐 모델을 찰스 다윈에서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1775∼1817)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밖에 캐나다도 2018년 발행될 신권에 처음으로 여성 인물을 넣기로 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인물 선정을 위한 공모에 들어갔다.
CBC뉴스 등 캐나다 언론에 따르면 세계 최초의 여성 항공기 디자이너인 엘시 맥길, 첫 여성의원 애그니스 맥파일, 원주민 출신 여성 운동가 섀넌 쿠스타친 등이 거론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9년부터 발행된 5만원권 지폐에 첫 여성 인물인 신사임당의 초상을 넣었다.
당시 신사임당은 장영실과 마지막까지 각축을 벌이다 5만원 주인공으로 선정됐는데, 이를 두고 진보적 여성단체 등에서는 더 많은 국민이 지지한 유관순을 제치고 "가부장적 사회가 만들어낸 현모양처의 여성상"을 선정했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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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일본은 우리보다 앞선 2004년부터 여성 작가 히구치 이치요(1872∼1896)의 초상을 5천 엔 지폐에 넣었다.
이처럼 각국이 지폐에 여성 인물을 앞다퉈 등장시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지폐 모델이 남성 인물 일색이어서 양성 평등을 퇴색시킨다는 비판이 나오는 데 따른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 등이 지폐에 일단 여성 인물을 넣기로 방침을 정한 후에 인물 선정에 들어갔으며, 제인 오스틴의 선정을 앞두고 영국 여성 의원들은 영국은행 총재에게 화폐 발행의 성 불평등 해소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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