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 꿈에 그리던 고국땅 밟다


 

중국에 남은 유일한 한국 국적의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88) 할머니가 두 달 전의 낙상사고로 인한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10일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을 출발해 한국으로 들어왔다.

 

1944년 일본군 위안부로 중국에 끌려갔던 하 할머니는 1999년 한국 국적을 회복한 뒤 2년여 잠시 한국에서 머무른 이후 약 10년 만에 병상에 누운 채 다시 고국에 온 것이다.

 

앞서 이날 오전 우한 병원에서 구급차에 실려 톈허(天河)공항으로 이동한 하 할머니는 오후 1시30분께 서울행 대한항공 KE881편에 탑승했다.

 

오후 4시30분께 인천공항에 내릴 때까지 하 할머니는 모두 환자운송용 병상인 '스트레처'에 누운 채 이동했다. 대한항공은 하 할머니를 위해 좌석 6개를 빼내 스트레처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원래 우한과 인천을 오가는 항공기는 소형기인 B-737이지만, 대한항공 측은 하 할머니 이송을 위해 중형기인 A-330 기종을 투입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하 할머니는 환자용 입국수속을 거친 뒤 곧바로 구급차를 타고 중앙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중국 국적의 동행 가족 또한 외교부의 협조 아래 별도의 입국 수속만 밟고 뒤이어 병원으로 향했다.

 

앞서 중앙대병원 흉부외과 박병준 교수 등 4명으로 구성된 의료진은 톈허공항에서 현지 의료진으로부터 하 할머니를 인계받았다. 중앙대병원 의료진은 이달 초 중국으로 건너가 하 할머니 건강상태를 진단한 뒤 한국으로 이송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소견을 낸 바 있다.

 

중앙대병원 측은 하 할머니를 중환자실에 입원시켜 필요한 검사와 치료를 진행한 뒤 수술 여부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박 교수는 "중국에서 받던 항생제 치료 등을 지속할 예정"이라며 "혈액검사 및 정밀검사 등을 시행해 정확한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추가로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환자가 평소 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 등을 앓아왔고 현재 병세가 깊어서 완전한 회복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하 할머니의 귀향에는 중국과 한국 양국의 특별한 배려도 있었다.

 

중국 당국은 하 할머니 이송 편의를 위해 별다른 출국 절차를 밟지 않고 곧바로 하 할머니를 태운 구급차가 공항 주기장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협조했다. 애초 병원 구급차에서 공항에서 사용하는 구급차로 옮겨야 하는데 이를 생략해준 것이다.

 

이에 따라 공항에서 리프트카를 이용해 하 할머니를 곧바로 기내로 이동시킬 수 있게 됐다.

 

여성가족부는 하 할머니의 중국 치료비 4천800만원을 지원한 데 이어 한국에서의 치료비 또한 지원한다. 일단 오는 11일 주민등록을 회복하고 국민건강보험도 취득할 계획이다.

 

보호자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필요한 경비와 제반 시설도 제공하기로 했다.

 

또 할머니나 가족이 원할 경우 요양병원 등에 입원해 장기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한국에 완전히 정착하는 것도 도울 예정이다.

 

강은희 여가부 장관은 "할머니께서 안전하게 귀국하셔서 다행이다. 할머니가 가슴 깊은 상처를 입고도 한평생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잃지 않고 강건하게 살아오신 데 대해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면서 "고국의 따뜻한 품 안에서 빠른 시일 내 건강을 회복하시도록 치료 지원에 성심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 할머니는 지난 2월 15일 이웃과 다툼을 벌이다 2층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갈비뼈와 골반 등이 부러져 의식불명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아흔을 앞둔 고령에 부러진 갈비뼈가 일으킨 폐 염증으로 한때 생명이 위독한 상태로 지냈으나 최근 의식을 회복하고 병세가 다소 호전됐다. 기관지 절개수술을 받고 호흡 상태도 한결 나아지며 주변을 인지하며 고개도 끄덕거릴 수 있는 상태로 전해졌다.

 

하 할머니는 17세 때인 1944년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일본군 위안부 모집책의 말에 속아 중국으로 끌려간 뒤 우한의 한커우(漢口)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으며 광복 이후에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중국인과 결혼해 남편이 데리고 온 세 딸과 함께 산 할머니는 사실상 국적을 가지지 않은 채 중국 귀화를 거부해오다 1999년 한국 국적을 회복하고 나서 지난 2003년 한국에 들어와 2년 7개월 머물기도 했으나 연고가 없어 결국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평소 고국을 그리워하며 특히 부모님이 묻혀 있는 고향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는 소망을 주변에 밝혀온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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