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내가 돈을 쓰는 건 너무 아까운데 어려운 남에게 돈을 주는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김군자 할머니는 자신의 장례비를 제외한 전 재산을 모두 기부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지난 23일 오전 8시께 노환으로 별세한 김군자 할머니는 앞서 2000년 정부로부터 받은 생활지원금 등을 모아 5천만원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했다.
당시 김 할머니는 "위안부로서의 설움보다 배우지 못한 설움이 컸다"며 "장례식 비용 5백만원만 남기고 모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김 할머니는 2006년 또 한 번 아름다운 재단에 5천만원을 기부한다.
이때 시민 7백여명이 할머니의 뜻에 동참하면서 당시 '김군자 할머니기금'은 약 11억원까지 불었다.
이후 2015년 5월 김 할머니는 그동안 모아둔 전재산 1억 5천만원을 마저 평소 다니던 경기도 광주시 퇴촌성당에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수중에 단돈 40만원이 남았지만 김 할머니는 "내가 돈을 쓰는 건 너무 아까운데 어려운 남에게 돈을 주는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평생 '나눔의 삶'을 실천해온 김 할머니의 소원은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사과를 받는 것이었다.
김 할머니는 고령에도 위안부 참상을 알리기 위해 매주 수요집회에 참석했다.
2007년에는 미국 의회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 참석해 지옥과 같았던 위안부 당시의 생활을 증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3일 김 할머니는 단 하나의 소원이었던 일본 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한 채 하늘의 별이 됐다.
한편 김 할머니는 1926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17살이었던 1942년 심부름인 줄 알고 집을 나섰다가 중국 지린선 훈춘 위안소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수차례 탈출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으며 그때 당한 구타로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안고 살았다.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와 밥장사, 옷장사, 식모살이, 노점상 등 억척같이 일을 하며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도왔다.
김 할머니의 빈소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차병원 지하 1층 특실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오는 25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