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새벽 비상소집령이 떨어져 아침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채 출근한 충북도 도로관리사업소 도로보수원 박모(50)씨는 시간당 90mm의 폭우가 쏟아지던 이날 오전 7시 20분께 물이 들어찬 청주시 내수읍 묵방 지하차도로 출동했다.
양수 작업을 시작했지만, 세찬 비가 그칠줄 모르고 계속 퍼부으면서 예상보다 작업 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점심도 챙겨 먹지 못한채 작업을 해야 했다.
22년만에 가장 많은 비가 청주에 퍼부은 이날 도로관리사업소는 일손이 턱 없이 부족했다.
그는 녹초가 된 상태에서 제대로 쉬지도, 식사도 못한 채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또다시 오창으로 출동해 일을 마쳤다.
오후가 되면서 비가 잦아들었지만 이리저리 도로 보수를 하다보니 저녁 무렵이 돼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우 여유를 찾아 작업 차량에 앉아 쉬던 그는 이날 오후 8시 20분께 숨진 상태로 동료에 의해 발견됐다.
중학생 딸과 홀어머니 단촐한 세식구의 가장으로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살아온 50대 가장은 그렇게 허망하게 삶을 마감했다.
그는 2001년부터 무기계약직으로 도로관리사업소에 들어온 뒤 비록 도로 보수라는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공무원'이라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일했다.
이생에서의 마지막이었던 그날도 그는 폭우를 마다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불평 없이 묵묵히 일하다 죽음을 맞이했다.
그토록 공무원임을 자랑스러워했지만 그는 완전한 공무원은 아니었다. 정규직이 아닌 '중규직'이었기 때문이다.
중규직 공무원은 정년이 보장되긴 하지만, 공무원연금법 등의 적용을 받는 완전한 공무원 신분이 아니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어정쩡한 처지에 있는 무기계약직을 빗댄 말이다.
그는 세상을 떠난 뒤에도 평소 자부심을 가졌던 공무원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다.
'공무원연금법' 등에 따르면 '공무원이 재난·재해현장에 투입돼 인명구조·진화·수방 또는 구난 행위 중에 사망하면 순직 공무원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순직 공무원은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다.
그가 수해의 현장에서 작업하다 숨졌는데도 이런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은 현행법상 무기계약직은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폭우의 현장에서 일하다 숨진 그에게 지급되는 보상은 충북도청이 전 직원이 가입한 단체보험에서 나오는 사망 위로금이 고작이다.
고용기관인 충북도가 무기계약직을 대상으로 가입한 산재보험은 근로복지공단의 심사에서 산재로 인정받는 절차가 필요하다.
충북도 관계자는 "박씨가 공무 중에 숨졌기 때문에 순직으로 처리를 하고 싶지만, 현행법률상 무기계약직은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며 "여중생 딸과 팔순의 노모가 있는 점을 고려해서 산재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충북도에는 박씨와 같은 무기계약직과 기간제 직원은 각각 215명, 424명이 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행정기관마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수천 명에 달하는 무기계약직과 기간제 직원이 있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전국의 자치단체에 근무하는 무기계약직은 5만2천900여 명, 기간제는 4만400여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무기계약직들의 모호한 지위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무기계약직이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판단하고 있다.
서울시도 지난 17일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무기계약직 2천442명 전원을 정규직 전환하겠다고 밝혔지만, 대상은 일반 공무원이 아니라 산하 기관의 근로자들이다.
대부분의 자치단체도 비슷한 상황이다. 기간제 직원의 무기계약직 전환만 고려하고 있다.
충북도의 한 관계자는 "현행법상 공무원은 공개채용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무기계약직의 일반직 공무원 전환은 사실상 어렵다"며 "다만 기간제 직원은 이달 말께 정부의 방침이 나오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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