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만나면 1만원씩 쥐어주던 용돈도 한사코 거절하던 착하고, 어른스러웠던 아이였습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11살 난 어린 조카를 잃은 큰아버지 배모(50)씨는 눈물을 훔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조카 A군은 지난 15일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어린이 보호구역 내 도로변을 걷다 시내버스에 치여 숨졌다.
시내버스 운전기사 B(60)씨는 사고 후 아무 조치 없이 현장을 떠나 1시간가량 노선을 따라 계속 운행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숨진 A군은 아버지가 36살에 낳은 늦둥이 막내다. 위로는 중학교 3학년과 1학년인 누나 둘이 있다. 아들이 없는 집안에 대를 이를 종손이라며 집안 어르신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배씨는 "평소 말썽 한번 피우지 않고 의젓했던 아이였다"면서 "장차 커서 집안 제사상을 차려야 할 종손이라고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조카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다니 믿을 수가 없고 가슴이 미어진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A군은 사고 당일 학교를 마치고 영어학원 수업을 받은 뒤 집으로 향하던 길에 변을 당했다.
A군과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란 박모(14)군은 "매일 저녁 도서관에서 책을 읽곤 했는데, 그날따라 도서관에 가지 않고 바로 집으로 가다 사고를 당했다"고 말했다.
박군은 지난 15일 A군이 버스에 치여 변을 당한 장소 인근에서 놀다 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사고가 난 지 나흘이 지난 19일 박군은 사고 현장에 작게 차려진 추모 공간을 찾아 "축구도 잘하고 공부도 아주 잘하던 친구였다"고 A군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했다.
A군이 숨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도로변에는 사고 이후 그를 추모하는 애도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고 지점 길가에는 A군의 친구, 유가족, 이웃들이 가져다 놓은 과자와 꽃, 빨간색 우산이 빼곡하게 놓여 있다.
경찰과 유가족은 사고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나 사고가 난 버스의 탑승객을 찾고 있다.
사고 이후 버스 운행을 계속했던 기사 B씨가 "사고가 난 줄 전혀 알지 못했다"고 진술하는 상황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혀줄 증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버스의 블랙박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워진 상태여서 사고 당시 버스 탑승자의 진술이 결정적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경찰은 보고 있다.
사고를 수사중인 흥덕경찰서는 B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 차량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상태다.
경찰은 지워진 시내버스 블랙박스 데이터를 복구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디지털 포렌식 조사를 의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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