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권길여 기자 =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우리나라 형법 제297조에 적혀있는 문구이다.
'성범죄'는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기는 사건임에도 우리나라는 타국에 비해 처벌 수위가 약하다.
실제 중국이나 이란, 네덜란드, 프랑스의 경우는 성범죄를 '살인'만큼 흉악범죄로 여기며 '사형'까지 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한국 법원은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성범죄자들에게 양형을 해주는 등 선처를 해주는 경우가 많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조롱 받고 있는 이유다.
피해 당사자 뿐 아니라, 보는 이들까지 황당하게 만드는 법원의 이해하기 힘든 갖가지 선처 이유를 모아봤다.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 이유가 대부분이니,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하며 천천히 읽어보자.
1. 나이가 어려 개선의 여지가 있다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한 '일진 중학생' 10명이 대전고등법원 제1형사부에서 "나이가 어려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감형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2. 대학생이다
길거리에서 만난 10대를 DVD방으로 데려가 성폭행 한 대학생들도 양형을 받았다.
당시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는 가해자의 신분이 '대학생'이자 '초범'인 점을 들며 양형해줬다.
결국 대학생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받았다.
3. 우발적 범행이었다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관이 여대생을 성폭행 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 수강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관은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하면서도 "술을 먹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양형해줬다.
4. 폭행·협박이 없었다
한 업체 사장이 트렁크 팬티만 입고 20대 신입사원에게 다리를 주무를 것을 주문했다.
사장은 여자 사원에게 문을 잠그라고 한 뒤 다리 위쪽까지 만질 것을 요구했지만, 대법원은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다며 강제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5. 술을 마셔 심신미약 상태였다
지적장애 2급 여성을 성폭행하려 했던 남성 2명이 심신 미약 상태를 인정받고 감형 받는 사례도 있었다.
광주고법 형사 1부는 한 명에게 "술을 마신 상태에서 범죄를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며 양형해줬고, 다른 남성에게는 "선천성 뇌성마비, 조울장애 등으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 결정 능력이 떨어지는 심신 미약 상태인 점을 고려했다"며 형량을 줄여줬다.
6.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다
한 남성이 평소 알고 지내던 '후배의 아내'를 성폭행 했지만, 재판부는 "가해자가 범행을 자백하고 깊이 뉘우치고 있다"며 양형해줬다.
결국 성폭행 가해자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라는 너그러운(?) 처벌을 받았다.
7. 초범이다
10대 소녀 한 명을 성폭행하거나 유사 성행위를 한 남성 3명과 여성 1명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돼 국민들이 분노했던 일도 있었다.
당시 인천지법 형사14부는 "피고인들이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초범이었다"며 양형의 이유를 설명했다.
8. 동종 범죄 전력이 없다
10대 의붓딸을 수차례 성폭행한 40대 아버지도 선처를 받았다.
수원지법 형사15부 "피고인은 보호 대상인 장애청소년이자 계부로서 잘 이끌어야 할 의붓딸을 대상으로 범행했다"면서도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동종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양형해줬다.
9. 피해자와 합의했다
전 국민을 소름 돋게 만들었던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의 피의자들도 항소심에서 최대 8년형을 감형 받았다.
재판부는 "1심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판단은 모두 정당하다"면서도 "항소심 과정에서 피해자와 합의한 점과 대법원 양형기준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권길여 기자 gilyeo@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