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민주항쟁 30주년 정부기념식에서 세대를 초월한 화합이 이뤄졌다.
10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선 1987년을 명동성당에서 보낸 아버지 김만곤 씨와 2017년 촛불을 든 딸 김래은 양이 무대 위에서 공개편지를 주고받는 모습이 연출됐다.
아버지는 딸에게 "30년 전 오늘 길 건너 성당에서 종소리가 울리자 자동차들이 일제히 경적을 울리며 6월 항쟁이 시작됐단다. 그날 밤 명동성당에 아빠도 있었다"는 회고를 들려줬다.
이어 "종일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직선제 쟁취를 외쳤다"며 "최루탄 연기가 거리를 뒤덮고 눈물을 흘렸지만, 그 눈물은 이 땅의 민주화를 향한 다짐이었다"고 떠올렸다.
아버지는 "그날 그렇게 싸워야 했던 것은 아빠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양심적인 사람들이 같은 꿈을 꿨기 때문"이라며 "민주화가 이뤄질 거라고,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될 거라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올 거라고 믿었단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전했다.
그는 "그런데 래은아, 아빠는 젊은 날 허황한 꿈을 꿨던 것일까"라고 물으며 "여전히 엄마·아빠의 삶은 팍팍하고 아들딸 같은 청춘들이 취업이 되지 않아 꿈을 접는 것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우리가 30년 전 조금 더 철저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에 많이 미안하고 부끄럽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아빠는 네게, 너의 친구들과 언니 오빠들에게 한없이 고맙다. 너희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와줘서 참으로 고맙다"며 "희미해진 엄마·아빠의 눈을 다시 밝혀줘서 고맙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용기를 이제 다시 갖게 됐다"고 고마워했다.
곁에서 아버지의 고백을 들은 딸 래은 양이 답사에 나섰다.
딸은 "아빠. 30년이라는 시간은 제게 참 멀어요. 제 나이의 두 배지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가난이 얼마나 힘든지, 독재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저는 잘 모른다"며 "그러나 피하지 않고 맞섰던 아빠가 자랑스럽고 어른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딸은 "그리고 저도 부끄럽다. 아프고 힘들어 눈물짓는 분들을 지나치기도 했고 차가운 바다에 가라앉은 언니 오빠들을 잠시 잊기도 했다"고 고백하며 "30년 전 아빠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왜 다른 이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지, 아픔을 나눠야 하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래은 양은 "우리의 꿈이 모두 같지는 않겠지만 보듬는 세상을 만들려면 서로 손잡고 지켜야 한다"며 "지금 어른들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가 꿈을 꾸고 키워나갈 수 있게 해달라. 가난이, 불행이 우리 꿈을 방해하지 못하게 해달라. 아름다운 꿈에서 우리 함께 살자"고 힘줘 말했다.
이 자리에는 1987년 계성여고 학생회장으로 명동성당 농성장에 도시락을 날랐던 신경희 씨와 4·16 추모합창단으로 활동한 계성여고 후배 전희나 양, 수배자 신분으로 6월 항쟁에 참가한 김정민·고혜순 씨 부부, 이한열 열사가 입원한 세브란스병원에서 보초를 섰던 손철옥 씨와 자녀 손민아·정아·건형 학생이 함께했다.
김만곤 씨와 래은 양은 편지 낭독이 끝나고 포옹하며 3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부녀의 정을 거듭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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