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서울시에 유일하게 소방서가 없는 자치구가 있다. 바로 경기도와 서울 남서부를 잇는 금천구다.
현재 금천구에는 구로소방서 산하의 소규모 119안전센터 하나가 전부다. 대형 화재 및 사고가 발생하면 인근 구로구에서 소방차가 출동한다.
자칫하면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는 상황이기에 서울시는 지난해 1월 금천구 독산2동 '말미 고개'에 소방서를 짓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1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소방서 설립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일부 주민들이 사이렌 소음과 집값 하락을 이유로 소방서 설립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말미고개 인근 시흥대로에는 소방서 유치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내걸렸고, 이곳에서 주민자치위원회와 통장협의회 등이 반대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소방서 설립이 예정된 말미고개는 극심한 교통 정체를 겪고 있으며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정류장이 위치해 있어 매우 혼잡하다"고 설명했다.
소방서 설립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독산2동은 위치상 부적절하다는 것이 주민들의 입장이다.
현재 구로소방서가 금천구 일대까지 관리하기에는 그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다.
금천구와 구로구 인구를 합치면 대략 70만 명을 넘어선다. 서울에서 한 소방서가 담당하는 인원으로는 최고치인 셈.
게다가 지난 24일 소방훈련을 해본 결과, 신고 접수 후 구로구에서 출발한 소방차가 금천구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20분이 걸렸다.
1~2분 사이에 생사가 갈리는 화재 현장에서 대략 9~10km 떨어진 곳까지 5분 안에 도착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지난 2월 27일 금천구 독산동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가까운 119 구조대가 먼저 현장에 도착했지만 장비 부족으로 구조가 늦어졌고, 결국 거주자 한 명이 사망했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소방서가 '혐오시설'로 취급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3월에는 부산 지역 고급주택가인 해운대 인근에서 주민들이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다며 민원을 넣는 바람에 소방차가 사이렌도 못 울리고 긴급출동하는 일이 벌어졌다.
최근에도 광주 동구의 한 주택가에 사이렌 소리를 줄여달라는 현수막이 붙어 소방관들의 씁쓸함을 자아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주거지를 '집값', '땅값' 등 경제적 가치로만 생각하다 보니 이웃 주민 전체의 안전을 외면하는 '님비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시는 금천구 독산2동이 골든타임을 사수할 수 있는 최적지로 판단, 소방서 건립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공익'을 이유로 주민재산권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킬 수도 없기 때문에 공감대 형성을 위한 설명회와 인센티브 제시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