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2일(일)

'휴거=왕따' 초등학생만 알아듣는 공포의 '암호'


 

"정말 휴먼시아 아파트에 살면 왕따 당하나요?"

 

최근 초등생 사이에서 '휴거'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며 온라인 상에서도 끝없이 그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난데없이 '휴거'라니 도대체 무슨 말일까? 원래 '휴거(携擧, the rapture)'의 사전적 뜻은 '예수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재림할 때 구원받는 사람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초등생들이 사용하는 '휴거'는 그런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휴거'는 다름 아닌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임대 아파트 브랜드 '휴먼시아(Humansia)'와 '거지'를 조합한 약자이다. 

 

아이들은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친구들을 '빈곤한 아이'로 낮잡아 보며 그들만의 암호(휴거)를 만들어 따돌리고 있다.

 

via 온라인 커뮤니티

 

한창 '금수저', '흙수저' 등 태어날 때부터 얻어지는 부(富)의 차이를 거론하더니 이제는 사는 주거지에 따라 편가름을 하고 있다. 

 

'휴거'는 어디서 나온 것이며 왜 이런 사태까지 온걸까?

 

지난 15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휴먼시아에 거주하는 한 가장의 이야기가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자영업을 하면서 5년째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는 최근 동네 주민으로부터 '휴거'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그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휴먼시아에 사는 엄마는 소외시킨다"며 "다른 아파트 엄마들은 휴먼시아에 사는 애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이야기 했다"며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어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며 불안한 기색도 드러냈다.

 


via 온라인 커뮤니티

 

이러한 비상식적인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많은 이들은 "'휴거'의 탄생에 어른들이 크게 일조한 것이다"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물질 만능주의에 젖어있는 어른들의 비뚤어진 생각이 어린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서울 소재의 A초등학교 교사 김씨 역시 이같은 문제들로 고민이 많다고 했다. 

 

그가 재직 중인 학교 역시 '휴거'처럼 학생들 사이에서 '평수'에 따라 친구를 가려 사귀는 분위기가 양산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은 물론 심지어 우리 교사들 사이에서도 거주지에 따라 학생들을 차별적으로 대우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가 고백한 사실에 따르면, 교사들은 상대적으로 평수가 작은 아파트에 '흉악범'이 살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학생들에게 작은 평수의 아파트 근처에 가지 못하게 교육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가난'에 대해 지나친 편견을 지니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흔히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고 말한다. 앞서 설명한 사례들은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잣대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적용된 셈이다.

 

또 우리 사회는 점차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험 점수로, 직업으로, 또 수입으로 사람의 등급을 매기고 보이지 않는 계층을 만든다. 이렇듯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차별과 따돌림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를 비참하게 한다.

 


 

물론 자식 키우는 입장을 생각하면 자신의 아이들이 좀더 유복한 형편의 친구들과 어울리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사회 구조적으로 고려했을 때 계층간 갈등과 차별이 심해질 때 수많은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어린 나이에 심한 차별을 당한 아이들은 성장한 뒤에도 우리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편견은 또 다른 편견을 낳을 것이다. 계속되는 편견은 빈부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며 결국 각종 범죄를 더 양산하는 문제가 부메랑처럼 되돌아 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당신이 무심코 내뱉는 '휴거'라는 단어 때문에 한 아이의 영혼이 무참하게 파괴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부터 바뀌어야할 필요가 있다.